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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판타지… 슈퍼히어로 필요 없죠”

입력 | 2009-02-19 02:58:00


판타지문학 거장 어슐러 르귄 e메일 인터뷰

《미국 출신의 어슐러 르귄(사진)은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로 잘 알려진 판타지 문학의 거장이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문학으로 손꼽힌다. 이들 중 유일한 여성작가이자 생존 작가인 르귄이 판타지 성장소설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으로 한국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마법사가 등장한다 해도

실수하고 고난 겪는 존재

가능한한 현실적으로 써

시리즈의 1, 2권인 ‘기프트’ ‘보이스’(시공사)가 이달 초 출간됐으며 20일 ‘파워’가 나온다. 르귄은 196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3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국내에는 1990년대 초부터 어스시 시리즈와 함께 ‘어둠의 왼손’ ‘바람의 열두 방향’ 등이 잇따라 소개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는 저자와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에도 화려한 싸움, 통쾌한 복수, 영웅전사가 없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평범한 주인공들이 방황, 혼돈을 거치며 자기 능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성장과정이 주축이다. 이처럼 여느 판타지와 다른 이유는….

“내 판타지 작품 중에 슈퍼히어로(superhero)를 다룬 것은 한 편도 없다. 마법사가 등장하더라도 그들 역시 보통 사람처럼 실수를 하고 고난을 겪는 존재로 그려진다. 나는 내 판타지 작품이 가능한 한 현실적이길 바란다. 현실 그 자체가 이미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들은 가상세계를 다루는 데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다.

“판타지 작품은 사실주의적인 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판타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줄 뿐 아니라 현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장래에 무엇이 될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은 좋다. 나이를 먹은 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삶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요컨대, 판타지 작품들은 ‘미래의 가능성’과 ‘과거의 선택’을 동시에 고찰해보도록 한다.”

―소설 속에서 ‘서부해안’이란 세계가 실제처럼 세밀하게 구현됐다. 이런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 과정과 평소 생활은 어떤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야기와 장소가 있더라도 오랜 시간을 들여 독서와 생각을 한다. 정보를 모으고, 가능성을 고려하고, 기록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내 일상생활은 매우 지루하다. 매킨토시 앞에 앉아 소설이나 시를 쓰고 미리 써놓은 것들을 수정한다. 장을 보고 요리하거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나 자신의 삶도 슈퍼히어로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의 SF·판타지에 수여하는 휴고상, 네뷸러상 등을 10여 차례 수상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80세를 맞았다. 문학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이 더 남아 있다면….

“정확히 말하면, 아직까지는 ‘79세’다! (르귄은 1929년 10월 21일생이다.) 전보다 쉽게 피로를 느끼긴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내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다. 할 수 있는 한 계속 쓰고 싶다. 내 한결같은 소망은 시를 좀 더 쓰는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새로운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한국 독자들이 내가 만든 나라 안을 마음껏 돌아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난 뒤 그들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이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신작 ‘서부해안…’ 3부작

초능력 청소년들의 성장기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기프트’ ‘보이스’ ‘파워’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청소년들의 성장기를 다룬 판타지 작품. 주인공 오렉, 메메르, 가비르는 각각 창조하는 능력, 책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 예지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사회와 상충된다. 오렉의 창조력은 파괴하는 능력으로 영지를 지켜온 고원지대에서 쓸모없으며 메메르의 책과 관련된 재능은 글을 사악하게 여기는 정복자 치하에서 숨겨야 할 능력이다. 노예인 가비르에게 예지력은 무의미하다. 혼란을 이기고 자신이 가진 재능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서정적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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