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4개국 순방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13일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그리고 검증 가능하게 제거할 준비가 돼 있으면 미북 관계 정상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및 서해안 긴장 조성 움직임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경고했고, 북의 인권과 일본인 납치 문제도 거론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 장관이 조지 W 부시 정부의 어느 관리들보다 훨씬 분명하게 북한에 북-미관계 정상화의 조건을 제시했다”고 논평했다. CNN도 클린턴이 “경고와 구애(求愛)가 담긴 대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또한 클린턴이 천명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이 긴밀한 한미 공조 위에서 실질적인 북핵 폐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다만 우리는 몇 가지 점에 대한 보다 분명한 태도 표명이 있었으면 한다. 클린턴 장관의 언급 중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핵을 제거할 준비가 돼 있다면”이란 대목이 바로 그렇다. ‘제거할 준비가 돼 있다면(is prepared to eliminate)’이라는 표현은 부시 행정부의 ‘핵을 폐기하면(to dismantle)’과는 의미가 크게 다르다. 클린턴의 말은 북이 실제로 핵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제거할 준비만 돼 있다면’ 모종의 관계개선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부시 행정부 때보다는 한발 더 유연해진 대북정책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선 불가피하게 유화적인 정책을 써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북한의 오판을 낳아 핵 폐기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음을 그동안의 경험이 가르쳐 준다. 미 공화당 정부 10년 동안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지만 북핵 검증을 위한 신고서마저 채택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우리는 19일 서울에 오는 클린턴 장관에게서 이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설명을 듣기를 기대한다. 자칫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대남 협박과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망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