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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미-소 첫 스파이 교환

입력 | 2009-02-10 02:59:00


1962년 2월 10일 독일 베를린 근교의 글리니케 다리.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잇는 이 다리의 동쪽과 서쪽 끝에 각각 한 사람이 섰다. 이들은 천천히 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지나갔다.

동서 양 진영 간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과 소련 사이의 첫 스파이 교환이었다. 미국이 내놓은 인물은 뉴욕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검거된 KGB 대령 루돌프 아벨이었다. 맞교환 상대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U-2기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였다.

U-2기는 소련의 방공망이 미치지 못하는 고고도(高高度)를 아음속(亞音速)으로 순항하며 소련 깊숙한 곳까지 촬영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정찰기였다. 공기가 희박한 고고도에서도 작동하는 특수 엔진과 가느다란 동체에 25m의 긴 날개를 가진 이 정찰기는 ‘엔진 달린 글라이더’에 가까웠다.

CIA는 U-2기를 ‘기상관측기’로 위장해 소련 영공을 수시로 통과하며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주요 산업기지는 물론 핵발전소와 미사일 발사대, 비행기 격납고 등을 샅샅이 항공촬영했다.

소련은 U-2기를 쫓아 미그기를 출격시켰지만 U-2기의 고도에 도달할 수 없어 번번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였다. 결국 소련이 선택한 것은 대공미사일의 성능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소련은 U-2기 항로에 개량형 SA-2 미사일을 집중 배치한 뒤 때를 기다렸다.

1960년 5월 1일 파워스가 조종하는 U-2기가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이륙해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소련은 무려 2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기체 후미를 맞은 U-2기는 나선형을 그리며 추락했다. 비상탈출을 한 파워스는 낙하산을 펼치고 지상에 닿자마자 체포됐다.

소련은 U-2기의 정찰카메라는 물론 멀쩡히 살아 있는 조종사까지 증거로 내세웠다. 결국 미국도 영공 불법 침입과 스파이 활동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예정됐던 미소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또 CIA는 이후 U-2기의 소련 영공 통과 작전을 중지했다.

1년 9개월여 만에 미국에 돌아온 파워스에겐 차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살아 왔다는 것 자체가 스파이에겐 치욕적인 불명예였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방송사 헬기 조종사로 일하던 파워스는 1977년 추락 사고로 불운한 삶을 마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