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초대석]암 이기고 예멘 신도시설계 수주 건축가 김석철 씨

입력 | 2009-01-08 02:58:00

300조 원 규모의 예멘 뉴 아단 신도시 프로젝트 설계를 준비하고 있는 김석철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 서울 여의도와 한강 둔치, 서울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그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뉴 아단은 상업과 산업 인프라가 조화된 신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뉴 아단, 이슬람 문화 - 전통 살려 지을 것”

건축가 김석철(66·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 씨의 몸에는 식도(食道)가 없다. 2002, 2005년 두 차례의 암 수술로 30% 정도 남겨진 위가 식도를 대신한다.

“작업에 집중하기는 편해졌어요. 술 먹자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웃음)”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키반 사무실. 김 대표의 쾌활한 목소리에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피로의 흔적이 없었다. 제한된 기능에 얽매이지 않은 이상적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그의 오랜 꿈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서울대 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등을 설계하고 여의도와 한강 둔치 계획안을 구상한 건축가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소를 재단했던 그가 지금 온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중동 예멘 해변의 허허벌판이다.

그는 항구도시 아단 서쪽에 인구 40만 명의 신도시를 만드는 ‘뉴 아단 프로젝트’의 설계 계약을 앞두고 있다. 예상 총공사비는 300조 원. 지난해 12월 16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마쳤으며, 최근 계약서를 받아 세부 사항을 조정하고 있다. 3월부터 실시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래 공들였던 중국 취푸(曲阜) 신도시 프로젝트를 두 번째 수술 때 중단해야 했죠. 7개월 전 건강을 회복해 도시학부 특강을 재개하러 간 이탈리아 베네치아대에서 쿠웨이트 건설회사 관계자로부터 뉴 아단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제안받았어요. 평생 그려온 이상을 실현할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 매달렸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있는 아단은 한때 베네치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항구도시였다. 뉴 아단 프로젝트는 남예멘의 공산화로 몰락했던 이곳을 세계 최대의 물류를 소화하는 이슬람의 새 중심으로 부활시키는 계획의 일부다. 신도시를 석유산업과 상업, 관광사업의 축으로 삼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 관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백지를 받아든 기분이었어요. 스케치북을 치워두고 이슬람 문화와 도시 전통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했습니다. 1975년 쿠웨이트의 자하라 신도시 설계 국제현상에 당선된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서구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건축 이상에 골몰하느라 이슬람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김 대표는 예멘의 미래를 짊어질 뉴 아단이 스위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인도 찬디가르 시(市)처럼 건축가의 영광에 바쳐진 도시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예멘 사람들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삼 달인 물에 탄 와인을 마셔 가며 고심을 거듭하던 어느 날 신들린 기분으로 그려낸 것은 아라베스크 무늬를 닮은 기하학적 평면 계획도였다.

“뉴 아단은 상업과 산업을 움직이는 두 개의 날개와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도시가 될 것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나란히 배치한 두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상업지구가, 서쪽에는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거죠.”

남쪽 해변에는 아랍 지역 전체를 대표할 최고급 관광단지가 개발된다. 촘촘히 짜인 양탄자처럼 매력적으로 정리된 계획 도면을 본 예멘 당국은 한국인 건축가가 제안한 아랍식 신도시 계획에 만족을 표했다.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주거 시스템의 모든 해답은 10세기 이전 부근에 세워진 전통 건축물이 가르쳐 주고 있어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미국 뉴욕에 세워질 만한 건물을 아랍 땅에 옮겨 심은 어색한 모양새의 도시죠. 뉴 아단은 아랍의 전통을 현대에 어울리게 발전시킨 건물로 채워질 겁니다.”

김 대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해외 건축 현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화를 벌어오지 않는 한 경제 위기의 속 시원한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멘은 사나와 아단을 잇는 지역에 10여 개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아랍 석유산업의 새로운 통로가 될 이곳에 더 많은 한국 건축가와 기업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전당 등 김 대표의 대표작에 대해 국내 건축계에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그는 “답답한 일본식 공연장을 모방하지 않고 한국인의 취향에 어울리는 공연장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 건축의 커다란 두 산이었던 고(故) 김수근, 김중업 씨에게 차례로 사사했다. 그의 작품에는 대지의 근본을 건축에 반영했던 김수근 씨의 호방함과 남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엄격했던 김중업 씨의 강직함이 모두 담겨 있다.

“내 꿈은 아직 종착역에 닿지 않았습니다. 통일된 한국 땅의 평양과 서울 사이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게 건축가로서 제 궁극적인 꿈이에요. 기약은 없지만…. 언제든 곧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건강관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겠죠?(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김석철 대표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69∼1971년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1972년∼현재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 △1998년∼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대 도시학부 초빙교수 △2002∼2008년 명지대 건축대학장 △2008년∼현재 명지대 석좌교수 △1992년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1998년 제1회 한국건축전 대상 △2004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