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단체 ‘비리-편향-신뢰 하락’ 비틀거릴때
HRW “한국은 좌우 갈려 함께 일하기 어려워”
그린피스 “정치 사안엔 일절 언급않는 게 원칙”
전문직 출신들 포진… 깊이있는 정책대안 제시
■ 서울대 국가석학과제 연구자료
요즘 국내 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들은 일부 단체의 운영진 비리와 정치 편향, 신뢰도 하락이 겹치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2000년 가입회원이 최대 5000명에 달했으나 올해는 불과 300여 명에 그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가 실시해온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는 2004년까지 줄곧 신뢰도 1위를 달리던 ‘시민단체’가 지난해에는 6위로 추락했다.
일각에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내 시민단체들은 환경, 에너지 등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이슈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해외 글로벌 NGO들의 사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아일보는 임현진 서울대 사회대학장과 공석기 선임연구원이 학술진흥재단의 국가 석학과제 위촉으로 올해 7월 연구한 ‘해외 글로벌 NGO 관계자 현지 인터뷰 자료’를 입수해 해외 유수 NGO들의 성공 비결을 알아봤다.
○ 정치 지향 벗어나 전문가 시대로
“한국은 좌우가 극단으로 갈려서 함께 일할 만한 지역 파트너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미국 뉴욕 본부에서 아시아 지역 담당 조사원으로 일하는 K 씨는 북한 인권 자료를 얻기 위해 국내 NGO들을 수소문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같이 털어놨다. 탈북자 인권이라는 하나의 이슈를 놓고도 국내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
그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한 필리핀에서 현지 사정에 밝은 지역 파트너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며 “현재로서는 한국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보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정권과 코드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우리 단체에 후원을 못하겠다는 분을 상당수 봤다”며 “시민단체도 지난 10년간 진보와 보수로 갈려 지나친 갈등을 빚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이념 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글로벌 NGO들은 좀 더 실용적인 정책 대안을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예컨대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환경 관련 이슈 이외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놓고 있다.
HRW는 본부 상근직 250명의 대부분이 기자, 학자, 공무원 등 각계의 전문직 출신으로 구성돼 깊이 있는 정책보고서를 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환경단체인 월드워치도 1년에 세 번만 발행하는 연구논문으로 재정 수입의 30% 이상을 충당할 정도로 전문성을 자랑한다. 이 논문은 매년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돼 국제기구 및 각국의 환경정책 입안에 쓰이고 있다.
○ 평생참여형 NGO로
그린피스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부에서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하는 지나 산체스(45·여) 씨.
그는 미국인으로 열두 살 때 처음 그린피스 미국 지부에서 2시간짜리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그린피스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중미지역 담당을 거쳐 1998년부터 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린피스 직원의 상당수는 그처럼 자원봉사로 시작해 인턴을 거쳐 활동가의 위치에 오른다.
구체적으로는 △유년기(일회성 현장 참여 프로그램) △청소년기(1개월∼1년의 다양한 자원봉사) △대학생(국제 자원봉사나 교환 프로그램) △직장생활(인턴으로 시작해 상근 활동가로 발전) △재교육 기간(7년 활동 후 전문성 확보 위해 정부, 연구기관으로 전직) △은퇴기(다시 자원봉사자로 참여, 지역 풀뿌리 현장에 기반을 둔 소규모 NGO 설립)의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생애 전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교육과 참여가 끊임없이 이뤄지면서 선순환의 충원구조를 마련해 NGO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반면 국내 NGO는 소수의 명망 있는 운동가를 중심으로 운영돼 원활한 시민참여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세대차이 극복 합리적 조직운영
글로벌 NGO는 시민참여가 활발한 만큼 다양한 연령대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소통하고 있다.
스위스 글랑에 있는 람사르 협약 사무국은 ‘자전거 타고 출근하기’ 등 생활 밀착형 이벤트로 신구세대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르웰린 영(50) 선임고문은 “젊은 활동가들이 일상의 삶에서 친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 같은 노력이 없다면 젊은층의 참여가 줄어 조직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NGO는 운동 1세대(1970, 80년대)와 2세대(1990년대) 그리고 3세대(2000년대 이후) 사이의 가치관과 조직운영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1세대가 강한 신념과 희생정신으로 무장됐지만 민주적 의사결정에 서투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그린피스 매년 회계감사 결과 공개
환경연합 연도별 보고서 공개 전무▼
■ 비교되는 회계 투명성
최근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재단 관계자가 정부 보조금과 기업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국내 비정부기구(NGO)들의 회계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은 회원 수가 8만여 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환경운동 단체지만 아직 연도별 회계보고서를 공개한 적이 없다.
반면 글로벌 NGO들은 매년 회계감사 결과를 공개해 재정 투명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경우 본부 조직(그린피스 인터내셔널)과 세계 지부(그린피스 월드와이드)로 나눠 일반기업처럼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매년 공개한다. 보스엔즈는 본부에 모금분야 전문가 2명을 고용해 정기적으로 회계보고와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보스엔즈에 따르면 모금 담당자들은 기업의 특수한 이해관계와 결탁된 후원금을 차단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