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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조영호]소인국 탐험같은 극미세기술

입력 | 2008-12-01 02:59:00


전자제품의 크기가 날로 작아진다. 지난 10년간 휴대전화의 크기가 획기적으로 줄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의 메모리 스틱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왜 전자제품이 자꾸 작아지는가? 휴대가 가능한 작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고 정교하게 다루기 위함이다.

정보기기가 정보처리 속도를 향상시키려면 전자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정보를 실어 나르는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최대속도(반도체에서는 초당 100km)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정보처리 속도를 향상시키려면 전자가 달려야 할 길을 짧게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전자제품을 작게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기술은 전자제품의 크기 축소를 통해 정보처리 속도와 용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20세기 전자혁명 시대의 꽃을 피웠다. 휴대용 정보기기의 탄생은 속도 향상을 위한 전자제품의 크기 축소화에서 파생된 부산물인 셈이다.

20세기 첨단제품에서는 정보를 실어 나르는 매체로 전자를 주로 사용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형태의 정보매체가 추가적으로 요구됐다. 즉, 전자보다 더 빠르고 미세한 빛, 물리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적 신호, 이미지와 색을 표현하는 미세한 잉크방울, 생명의 정보를 담은 바이오분자 등 다양한 형태의 비(非)전자 정보매체가 필요하게 됐다.

이러한 기계, 광, 유체, 바이오 등 비전자 정보매체를 빠르고 정교하게 처리하기 위해 기계와 전자 부품을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로 작게 만든 것이 미세기계전자시스템(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이다. MEMS는 반도체 기술을 응용하여 극미세 기계와 전자 부품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 수 있어 전자와 비전자 정보를 동시에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복합기능을 갖고 있다.

MEMS 응용제품은 자동차 충돌을 감지해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에어백, 손의 흔들림을 감지해 이를 보정하여 흔들리지 않은 영상을 얻게 하는 손떨림 보정 카메라, 미세한 잉크방울의 크기와 색을 이용하여 이미지 정보를 출력하는 잉크젯 프린터, 전자보다 빠르고 미세한 빛을 이용하여 고밀도 대용량 정보를 표현하는 디스플레이와 광디스크(CD와 DVD), 유전체와 단백질 그리고 세포에 기록된 바이오 정보를 분석하는 의료진단기에 사용된다.

MEMS 부품의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통상적인 크기의 부품이 동작하는 거시영역에서의 자연법칙 및 현상과는 완전히 다른 극미세 영역의 세계가 펼쳐진다. 걸리버가 느낀 거인국과 소인국이 전혀 다른 세계였듯이 말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극미세 영역에서의 새로운 자연법칙의 이해와 발상의 전환을 위해 극미세 영역에서 동작하는 생명체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극미세 생명체의 구조와 원리에 기반을 둔 MEMS 연구는 안구의 수정체 조절 기능을 모사한 카메라의 자동초점렌즈, 비장의 노화 적혈구 선별기능을 모사한 세포진단기, 췌장의 생체물질 선별기능을 모사한 혈세포 분리기, 전기뱀장어의 발전원리를 모사한 휴대용 배터리 등 새로운 제품 개발로 나타난다. 인간의 감각, 운동, 사고에 관여하는 극미세 생체분자를 본떠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MEMS 제품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다.

인간이 가진 정교하고 종합적인 감각, 운동, 사고 기능은 다른 생명체보다 존엄하고 가치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미래 MEMS는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적 정보를 정교하고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고등제품으로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MEMS의 극미세 영역에는 또 다른 과학기술의 세계가 있으므로 과학자들은 소인국과 대인국을 오가던 걸리버처럼 끝없는 탐험을 계속할 것이다.

조영호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