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신 결혼이주여성 마에바 기미(가운데) 씨가 아들 한수 군(오른쪽)과 함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지도사의 도움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다. 김현지 기자
요즘 자녀 교육에 관심을 쏟는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다. 다문화가정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책을 읽고 문화행사에 참여하며 자녀가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서울 중구 충무초등학교에서 열린 ‘다문화가정 어울마당’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자녀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엄마, 너무 늦게 읽잖아. 내가 읽을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한수(8) 군은 어머니와 함께 교과서를 읽을 때가 제일 좋다.
한수 군의 어머니 마에바 기미(40·경기 구리시 수택동) 씨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
한수와 어머니 모두 더듬거리며 책을 읽지만 그래도 한국말을 배우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다문화가정 열성 엄마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익히느라 바쁜 결혼이주여성들. 자녀에게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자녀 교육에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요즘 가족과 지원기관의 도움으로 자녀 교육에 열성을 쏟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주목받고 있다.
○ “한국말 너무 힘들어요”
한수는 여섯 살이 돼서야 말문이 트였다. 어머니가 한국말이 서툴러 말을 많이 하지 않다 보니 한수도 늦게 말을 배웠다.
자녀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은 외국인 엄마가 겪는 최대 어려움 중 하나다.
마에바 씨는 “13년 전 한국에 왔지만 한국말은 여전히 어렵다”며 “정확하지 못한 내 발음을 따라 할까 봐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엄마들은 아이 학교에서 보내오는 알림장도 고민거리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온 지 8년 된 조선족 노은실(가명·35·경기 안산시 고잔동) 씨는 “알림장에 ‘준비물 리듬악기’라고 써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보냈다가 아이가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다”며 “아이 준비물 챙겨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 자녀와 함께 책 읽으며 같이 한국어 공부
마에바 씨는 아이가 말을 잘 못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학교에 다니면 저절로 말을 배울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다문화가정 방문 교육을 지원하는 남양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마에바 씨 가족을 담당하게 된 안선희 지도사는 “책을 읽을 때 꼭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라”고 권했다.
마에바 씨는 “내가 한국말 못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알아서 공부해라’고 한 것을 후회한다”며 “요새 하루에 두 번씩 30분 동안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가족 모두가 도서관에 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알림장 읽는 법을 배우고 센터에서 사귄 외국인 엄마들에게서 학교 시험제도에 대한 정보도 듣는다.
생후 7개월 된 아들이 있는 베트남 출신 막티리엔(20·경기 구리시 토평동) 씨도 열성 엄마에 속한다.
그는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국에 왔다”고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온 후 하루 4, 5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한 덕분에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아이 키우는 정보를 얻고 싶어 음식을 차려 놓고 이웃에 사는 한국인 엄마를 초대하기도 했다.
○ 자녀 교육에 남편 역할 중요해
막티리엔 씨가 한국말을 빨리 배우고 자녀 교육에도 관심을 쏟는 데는 남편 박영수(43) 씨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박 씨는 아내를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교회에 보내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또 하루에 두 번씩 20∼30분 동안 아내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아빠가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
안선희 지도사는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친구를 사귀면서 어울릴 모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티리엔 씨는 “나 같은 외국인 엄마들은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하려면 한국 엄마보다 몇 배는 더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한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외국인 엄마 “이것만은 꼭”
“부모가 당당해야 자녀도 당당하다”
다문화가정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소극적이기 쉽다. 자녀의 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꺼려지고 다른 학부모와 친분을 쌓는 것도 힘들다.
부모의 관심이 없으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문화가정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신경 써야 할 점을 한국청소년상담원의 도움말로 알아봤다.
다문화가정 부모들은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은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야 자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는 그런 당당함을 보고 배운다.
말과 쓰기는 자녀 교육의 첫 단계다. 어머니가 한국말을 잘하는 것은 자녀 교육에 매우 중요하다. 언어를 배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녀가 어릴 때 함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녀가 학교생활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녀의 알림장을 꼭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겨줘야 한다. 또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담임선생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청한다. 학부모 모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다문화가정에서는 한국 출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습득하는 데 외국 출신 배우자가 서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아직 일부에서 다문화가정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을 가져야 자녀가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또 자녀가 부모 양쪽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녀 언어교육과 학교생활 지도에 지원기관으로부터 전문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전국에 80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을 위한 시민단체 프로그램도 활용할 수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