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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 등 금융자산이 빚의 2배… 대출 연체율 0.6%

입력 | 2008-10-10 02:54:00


■ 외신 한국관련 ‘의도적 오보’와 진실

은행 달러자금 의존? 은행 대출금 873조원 대부분 원화로 조달

외신보도에 왜 민감? “괜찮다” 정부말만 믿다 환란 맞은 악몽탓

“9월 위기설등 과장 있었지만 취약부분 점검 계기 삼아야” 지적도

《2005년 4월 한국 정부가 ‘5% 룰’ 강화 방침을 밝히자 외국계 펀드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투자자에게 투자 목적을 밝히도록 하고 경영권 참여 시 자금 출처와 주주 구성을 공개하도록 했기 때문. 당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금융 허브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정신분열적 조치” “경제 국수주의” “외국 투자 규제 목적”이라면서 날이 선 기사를 내보냈다. 5% 룰은 미국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고 심지어 영국에서는 3% 룰이 적용되고 있던 상황.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외신과 외국 투기 자본의 ‘의도적인 한국 흔들기’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 직후인 4월 이 신문은 진로가 외국 자본이 아닌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에 인수되자 “한국이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최근 외국 언론들이 잇달아 한국의 금융 상황에 대해 문제를 삼고 나서면서 ‘한국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반론 보도문을 내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취약해진 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과 금융 전문가들은 한국 상황에 대한 외국 언론의 일부 보도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하거나 부풀린 측면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아예 허무맹랑한 보도가 아닌 경우에는 취약한 부분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외환보유액으로 일시적 외채 상환 대응 가능

외신들은 최근 한국의 외환보유액과 총외채 규모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대외채무 상환 능력을 문제 삼는 것이다.

9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397억 달러. 하지만 총외채는 4198억 달러다. 언뜻 보면 갚아야 할 돈보다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에 빌려줘서 언젠가 받아야 할 돈(대외채권)이 4225억 달러로 총외채보다 27억 달러 더 많다.

게다가 총외채 4198억 달러 가운데 실제 빚은 2680억 달러 정도라는 게 정부와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당분간 돌려줘야 할 필요성이 적은 채무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갚을 수 있는 △조선회사 환 헤지 비용 △수출 선수금 △외국인 투자기업 차입금 등 1518억 달러를 뺀 수치다. 이 밖에 달러가 아닌 원화로 지급하는 외국인의 원화표시 국채·통안채 매입액(518억 달러)도 직접적으로 외화 금고에서 지불해야 할 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 가계자산 많아 부채 상환 능력 충분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민간부문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80%에 달해 과도하다고 보도했다. 가계의 채무건전성에 대한 지적이다. 실제로 6월 말 현재 개인의 금융 부채는 781조 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276조 원)에 비해 2.8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GDP 대비 비중 역시 56.2%에서 81.3%로 커졌다.

하지만 가계 채무건전성을 보려면 부채의 절대규모만 볼게 아니라 빚을 갚을 수 있는 자산도 함께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개인의 저축과 증권투자액 등 총금융자산 규모가 6월 말 현재 총금융부채의 2.22배로 부채를 갚고도 남는다. 금융자산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45% 정도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 역시 7월 말 기준 0.6%에 불과해 가계부채 과다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 조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주가 하락 등에 따른 자산 디플레이션(가치 하락)이 복병이다.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그만큼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장기 적립식 펀드 세금 감면 조치 등 증시 부양책을 검토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같은 자산 디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 예대율만으로 은행 건전성 판단은 비약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HT)은 한국의 은행이 대출을 해 주기 위해 해외 자금 조달에 의존했다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금융위원회는 이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금(873조 원)은 거의 전부를 원화자금에서 조달되고 있다는 것.

또 파이낸셜타임스는 은행의 예대율(예금액 중 대출액의 비중)이 높은 것을 문제 삼았다.

시중은행들의 평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외환위기 당시 7%에서 현재 11%로 늘어났고 부실채권 비율이 0.7%(6월 말 기준)에 그치는 등 국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은 안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대율만으로 금융건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악의적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또 금융위는 7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예대율은 105.4%(양도성예금증서를 예금에 포함)로 미국(112.0%)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 외신에 민감한 한국, 정부 책임도 있어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 언론 보도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환란의 기억’ 때문이다.

1997년 11월 5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가용외환보유액은 2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긴급 타전했다. 같은 날 저녁 홍콩페레그린증권은 “당장 한국에서 빠져나와라(Get out of Korea. Right Now)”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전 세계에 뿌렸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은 튼튼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으나 결국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위한 정책이행각서에 서명했다. 진실을 감추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정부의 책임이 다는 아니다.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의 종속 변수라는 태생적인 한계도 빼놓을 수 없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의 금융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대외여건에 달려있고, 이런 점에서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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