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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이종식]은행 과열+기업 과욕+정부 태만=‘키코참극’

입력 | 2008-10-08 02:49:00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환율이 1300원대로 치솟자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동차부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 씨가 본보의 지난달 25일자 ‘키코 피해 130개 기업 집단소송 준비’ 기사를 보고 연락해 온 것.

“아무 일도 못하고 환율 등락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환율 급등으로 하루에 수천만 원씩 앉은 자리에서 까먹는데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는 지난해 8월 거래 은행 직원의 권유로 환(換)위험 헤지용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

은행 직원은 “환율이 당분간 안정세를 띨 것이기 때문에 외환 선물 거래보다 이익이 높다”며 “환율이 오르더라도 상품의 거래 조건을 바꿀 수 있어 기업에는 손해가 없다”고 권했다.

비슷한 상품으로 손실을 봤던 A 씨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은 “대출 연장과 신용등급 상향을 위해선 상품 하나 정도는 가입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대출을 조건으로 한 이른바 ‘꺾기 영업’이다.

A 씨는 구두로 마지못해 승낙을 했고 직원은 재빠르게 본점과 거래를 성사시킨 뒤 계약서를 팩스로 보냈다.

한 언론으로부터 ‘일본 아성 넘보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업체는 현재 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날 기준으로 키코 손해액만 30억 원. A 씨는 10년 동안 번 순이익을 몇 달 만에 날렸다며 울먹였다.

“소송비용도 여의치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집단소송에 관한 기사를 보고 참여하려고 연락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A 씨 업체처럼 키코에 가입해 피해를 본 업체는 8월 말 현재 517개로 1조6000억여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은행 측도 할 말은 있다. 지난해는 은행 간 대출 경쟁이 치열해 일부 중소기업들은 과도한 환 헤지 욕심에 은행 간 키코 수수료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고 반박한다. 키코와 같은 파생상품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감독도 도마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판단은 법원의 몫이 됐다. 법원 관계자는 “상품 약관을 거짓으로 설명하는 등 고의적 과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며 난감해했다.

‘키코 환란’은 은행의 과잉 영업과 기업의 욕심, 정부의 관리부실이 빚어낸 참극이다. 법의 심판대에서는 ‘키코 환란’을 어떻게 평가할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건실한 중소기업인들의 고통이 치유될지 주목된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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