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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칼럼]‘거위의 꿈’

입력 | 2008-09-20 02:59:00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당당하고 아름다운 혼혈가수 인순이 씨가 부르는 ‘거위의 꿈’의 노랫말이지요.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저는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팔뚝의 솜털들이 오스스, 일어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 꿈꾸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뭐 그런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빛바랜 실용의 상상력

하기야 꿈이란 거위가 비상(飛上)의 날을 기대하듯 헛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꿈마저 꾸지 못하는, 꿈마저 잃어버린 세상이라면 삶의 질곡(桎梏)을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겠습니까.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 양극화의 그늘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 같은 노동조건에서도 임금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들, 지어놓은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도산의 위기에 처한 중소 건설업자들, 장사가 안 돼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 신분 상승의 사다리인 교육에서조차 밀려나야 하는 빈민계층의 아이들, 그들에게 꿈마저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시절, 꿈도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믿음이 이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꿈들이 모여 선진화를 이뤄낼 수 있으리란 믿음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되려면 꿈들을 모아내는 동력(動力)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동력을 정치적 상상력에서 찾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7개월 전 취임사에서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의 정치적 상상력은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실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지금 성장과 통합, 실용의 상상력은 너무 빨리 그 빛이 바랜 듯싶습니다. 경제성장은 ‘투기 자본주의’가 판치는 시장만능주의의 세계화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미국경제도, 중국경제도, 세계경제가 온통 어렵다는데 한국경제만 잘 풀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내년 말쯤 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대통령 말씀’만으로 흔히 말하는 경제 심리가 나아지겠습니까.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신뢰, 그것이야말로 꿈들이 모여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동력의 바탕이겠지요.

동력의 바탕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려면 중도(中道)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 대사는 진리를 찾는 길은 화쟁(和諍)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툼을 조화시키는 화쟁이야말로 중도의 근본이지요. 그렇다고 중도가 아무 원칙이나 중심도 없이 이것도 맞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어중간은 아닙니다. 원효는 화쟁의 방법 중 하나로 이변비중(離邊非中)을 꼽았습니다. 극단을 떠나되 단순히 가운데는 아니라는 뜻이지요. 중도란 문제의 핵심, 과녁의 한복판을 꿰뚫는 실용의 방식입니다. 떳떳하고 알맞은 중용(中庸)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명박 정권은 촛불시위에 덴 탓인지 너무 빨리 중도 실용의 길을 포기한 듯싶습니다. 국민통합의 얘기는 쑥 들어가고 세상은 더 분열되고 있습니다. ‘좌파 정권 10년의 그늘’은 대선 캠페인으로는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권자 다수가 선택해 권력을 위임받은 후에는 ‘좌파의 그늘’을 포용하고 치유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지켜야 할 원칙이 분명하다면 타협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를 부정하고 배제(排除)하려고만 한다면 국민통합은 헛구호에 그칠 것이고, 꿈을 모아 현실로 만드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소통의 언어, 단절의 언어

‘전진우 칼럼’은 이제 그만 접습니다. 7년 동안 써왔으니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소설가 김훈 씨는 얼마 전 “우리 사회의 언어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인 양 말하는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단절의 장벽을 쌓는 무기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진우의 언어’도 행여 무기는 아니었는지 그 점이 두려울 뿐입니다. 부디 ‘거위의 꿈’들이 모여 현실이 되는 내일을 기원하며 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전진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