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옥스퍼드대의 교수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영국에는 광우병 소가 무더기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인간 광우병 환자까지 나타나 사육하던 소들을 모조리 도살 처분하는 등 영국 전체가 뒤숭숭하던 때였다.
유형별 발병위험성 결론 못내려
그곳 교수들의 얼굴에는 우려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 있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은 ‘인간 광우병이 긴 잠복기를 거쳐 이제 나타나기 시작해 매년 증가하고 있으니, 앞으로 무수하게 많은 환자가 발생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동안 광우병 쇠고기를 먹고 자란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잠복기를 거침에 따라 많은 환자가 드러나게 될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악몽이요, 영국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당시 영국 교수들의 염려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도축한 소의 살을 뺀 부수적 산물을 소 사료에 첨가해 사용하는 것이 광우병 발병 과정의 핵심임을 파악해 1996년부터 동물성 사료 사용금지 조치를 취한 것이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적으로 1993년에 연간 수만 마리였던 광우병 소의 발생률이 꾸준히 줄어 작년에는 141건만 보고됐다. 더 고무적인 것은 인간 광우병 환자가 1999년 29명이 발생한 것을 정점으로 지난해에는 새롭게 보고된 환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역학적인 검토에 근거하면 광우병이 사라지고 있다고 추정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여기에 유전학적 요소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기본 병리 기전에 관해서는 프리온 단백질이 MM, MV, VV형의 세 가지가 있는데 광우병 환자가 모두 MM형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MM형이 광우병에 더 민감하고 다른 형은 저항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낳았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MV나 VV형은 잠복기가 MM형보다 길어서, 광우병이 MM형에서 빨리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 영국에서 보고된 광우병 환자가 VV형이었다는 점은 이러한 해석이 사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MV나 VV형인 환자를 중심으로 광우병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밀어 닥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MV나 VV형이 저항성이 큰 것이라면 실제로 발생하는 환자는 극히 소수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요즘 국내에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의 계기가 된 논문 저자인 한림대 김용선 교수도 한국인의 94%가 MM형이라는 사실만으로 광우병에 더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최근 언론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실인가. 답은 “더 연구해 보아야 안다”이다. 불확실한 현상의 속을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밝혀내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다. 사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할 때에 추측과 상상이 무성하게 되고, 이는 흔히 오해를 바탕으로 한 불안과 공포를 낳게 된다. 최근의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광우병 논란이 그 한 예다. 광우병 위험과 관련해 지금까지 논란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정치권에서는 이에 불을 지피고 있지만, 이 문제는 엄연한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정확한 사실 밝혀 불안 막겠다
이런 사회적인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근 과학계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국민이 광우병의 위험을 잘 인식하게 하면서도 불안이 증폭되지 않게 과학기술 측면에서 정확한 사실과 주장을 지속적으로 밝힐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은 현실적으로 닥친 더 절박한 문제, 즉 축산 농가의 생존 문제를 빨리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인명피해가 벌써 셋이 됐다.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