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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카페]숨은 현장 챙기는 ‘회장님 봉투’

입력 | 2008-04-23 03:01:00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에게는 하루 일과 중 독특한 일정이 있습니다.

5만∼10만 원이 든 봉투 몇 개를 들고 백화점 주차장과 식품작업장 등 백화점 내 구석진 곳을 찾는 일입니다. 정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하는 주차요원이나 청소원들에게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하라”며 봉투를 건넨다고 합니다. 화려한 백화점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런 식으로 정 명예회장이 건네는 돈은 하루 평균 50만 원, 그러니까 한 달에 족히 1500만 원은 된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음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봉투 전하는 일을 빼먹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이 돈봉투 ‘선물’을 함께 모아 회식을 할 때 쓴다고 합니다. 정 명예회장의 ‘눈에 띄는’ 직원들이 봉투를 받게 돼 몇 사람에게 봉투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네요.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니 직원들도 정 명예회장을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이!” 하며 그는 손을 들고 꼭 화답합니다. 매장에서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옆으로 비켜서는 모습도 인상적이라고 임직원들은 귀띔합니다.

정 명예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3남입니다. 몽구(MK), 몽헌(MH), 몽준(MJ)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다른 형제들에게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 경청호 부회장 등 유능한 전문경영인에게 과감하게 의사결정 권한을 넘겨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오너가 됐죠.

하지만 백화점업계 2위인 현대백화점의 성공 뒤에는 정 명예회장만의 독특한 ‘현장경영’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회사 내부에선 나옵니다. 먼지가 풀풀 나는 백화점 점포 신축공사 현장을 찾아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는 그의 모습이 작고한 정주영 창업주와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더군요.

백화점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정 명예회장의 행보에서 고객과 임직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운 듯한 느낌입니다.

정효진 기자 산업부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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