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건설이 사상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해외 수주는 398억 달러로 이전 최대였던 2006년 165억 달러의 두 배를 웃돈다. 올 1분기 수주액, 올 연간 예상 수주액 등에도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훈풍이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해외건설 덕분에 국내 경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목돈을 벌어왔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1970년 말∼1980년대 초나 지금이나 해외건설 호황이 ‘오일 달러’ 덕분인 것은 비슷하다. 그새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 공사인력 3500명 중 100명 남짓
GS건설은 2006년 중동의 오만에서 아로마틱스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12억 달러에 수주했다. 공사현장에 상주할 인력만 3500명이다. 그러나 GS건설이 파견한 한국 직원은 공사관리, 구매 등의 100명 남짓이다. 나머지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출신으로 단순 노무자들이다.
삼성건설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짓는 세계 최고(最高) 빌딩 ‘버즈 두바이’ 현장에도 한국인 인력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대우건설 이상권 자금팀장은 “1983년 리비아에서 일할 때는 한국 근로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매주 전용기를 띄웠다”며 “리비아 인민위원회에서 ‘한국 근로자가 폭동을 일으키면 위험하다’며 인력 제한에 나설 정도로 한국인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1981∼1983년 당시 해외 현장에 상주하던 한국 인력은 17만여 명이었다. 지금은 사상 최대 호황이지만 해외 현장의 한국 인력은 고작 6000명 남짓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 건설 인력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기획팀장은 “해외 건설현장에서 한국인의 역할은 20∼30년 새 단순 노동에서 전문분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해외 근무 혜택 줄고… 물가는 급등
대림산업 정상권 부장은 1985년 리비아 현장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때 매달 80만 원을 받았다. 물론 야근수당 등을 합친 금액이다. 당시 입사 동기들의 월급은 30만∼35만 원 선. 해외에서 근무하면 2.5배를 받은 셈이다.
정 부장은 “당시 서울 잠실주공아파트 43㎡ 한 채 값이 1500만 원이었다. 단순 노무자들도 중동에서 3년 정도 일하면 이런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임금 및 물가수준이 높아졌고 집값에도 거품이 많이 끼었다.
GS건설에 따르면 과장급이 해외 현장에서 근무하면 한국 근무 때보다 연간 2000만 원을 더 받는다. 해외에서 3년 동안 일해도 더 쥐게 되는 돈은 6000만 원으로 서울의 웬만한 전세금도 안 된다.
○ 한국경제 덩치 커지며 비중 줄어
해외건설협회와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1981년 수출액 대비 해외건설 수주액 비중은 64.6%였다. 이 숫자가 지난해 10.7%로 감소했다. 지난해 수출액 대비 해외건설 매출액 비중은 5%도 안 된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자동차 전자 등 다른 분야가 성장하면서 건설의 비중이 줄었다는 얘기다.
김태엽 팀장은 “1970년대 말에는 해외 비중이 매출의 70∼80%인 업체도 많았다”며 “요즘은 해외 비중이 전체의 30% 남짓이어서 해외 수주가 늘어도 수익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건설 사장은 “국내 건설경기 침체 탓에 수익성이 낮은 해외공사를 따내기도 한다”며 “그래도 올 한 해 건설업계가 해외건설 인력 1500명을 새로 뽑은 건 고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