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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못다한 연구 후배들이 이어주길”

입력 | 2008-03-26 02:50:00


요절 故 조성열 박사 아버지, 고대에 20억원 기부

아들 유언 따라 전 재산 처분… 시신도 연구용 기증

9년의 미국 유학생활 끝에 얻은 박사학위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2004년 2월 귀국했지만 6개월 만에 임파샘암(악성 림프종) 선고를 받았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고 조성열 박사. 1995년 고려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을 때 조 박사의 아버지는 경영전문대학원(MBA)에 가라고 충고했다. MBA가 더 장래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조 박사는 이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농업은 이제 1차산업이 아닌 환경이나 식량주권과 직결된 미래 산업”이라며 학부 전공을 고집했다. 결국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워싱턴주립대에서 농업자원경제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땄다.

조 박사의 ‘불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귀국 후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은 뒤 2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6년 8월 조 박사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죽은 지 반년이 지났다. 아버지 조덕행(74) 씨는 못난 박사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떠올렸다. 사망 직전 “내 시신이 불치병 연구에 쓰일 수 있도록 고려대 안암병원에 기증해 달라. 사망 보험금 3억 원도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모교 후배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유언한 것.

조건이 맞지 않아 보험금은 타지 못했지만 조 씨는 아들이 못 다한 연구를 후배들이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서울 도봉구 우이동의 32평 전세 아파트 한 채만 남기고 고향 청주의 땅과 건물을 모조리 팔아 모은 돈이 20억2000만 원이었다.

조 씨는 이 돈으로 효봉장학회를 세운다. 장학회 창립총회는 29일 오후 3시 고려대 생명과학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효봉은 아들이 죽은 뒤 이름 대신 붙인 호.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정환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이 며칠 전 조 씨에게 개회사를 맡겠다고 했다. 그는 2004년 당시 조 박사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고 그를 스카우트한 당사자였다.

이 전 원장은 “고인의 뜻이 농업경제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잘 전해지길 빈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