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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남아공 인종차별 철폐 투표

입력 | 2008-03-18 02:58:00


1992년 3월 18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역사적인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수백 년에 걸친 백인의 권력 독점과 흑인 차별정책을 유지시켰던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 데 대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였다.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아파르트헤이트는 17세기 중엽에 백인이 남아공 일대로 이주하면서 제도화됐고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의 단독정부 수립 후 법제화됐다.

국민투표에는 백인 유권자 328만여 명이 참가해 68.7%가 철폐에 찬성표를 던져 350여 년에 걸친 남아공의 인종 차별이 막을 내리게 됐다.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국민당과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즉시 협상기구를 만들어 흑인에 대한 투표권 부여 원칙에 합의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개혁안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것 중 하나는 과거사 청산이었다.

만델라는 집권한 뒤 과거 청산에 착수했다. 만델라는 1996년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했고 과거 정부에서 자행한 인권침해 범죄를 낱낱이 조사했다.

남아공의 과거 청산은 철저한 탄압과 숙청을 가져왔던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달랐다.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진상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추구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무게를 두는 대신 화해를 추진했다. 옛 가해자는 죄를 고백하고 사죄하면 사면을 받았다. 피해자는 보복 대신 진실규명과 피해보상에 만족해야 했다.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진상규명과 가해자 사면, 피해자 보상을 통한 평화적 청산과 화해 추구라는 선례를 만들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위원회가 밝혀낸 진실은 위원장이었던 데즈먼드 투투 주교가 말했듯 ‘불충분’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를 속히 마무리짓고 국민의 관심을 다음 세대로 돌렸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상당수 백인은 수백 년간 지속된 아파르트헤이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남아공이 만약 철저한 처벌과 탄압을 시도했다면 사회는 두 동강 날 수 있었다.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인종 차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만델라 정부는 국민을 분열시킬 수 있는 처벌 위주의 과거 청산보다 화합의 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증오와 보복 대신 평화와 화합의 길을 택했던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1993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