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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신석호]‘北살길은 核아닌 경제’ 알려준 대동강맥주

입력 | 2008-03-15 02:49:00


북한이 평양 대동강맥주를 연일 홍보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9일 평양발 기사에서 이 맥주의 맛을 극찬했다. 총련계 신문인 조선신보도 14일 맥주 맛의 비밀이 ‘빠른 공급 속도’에 있다고 보도했다.

2002년 이후 일곱 번 평양을 방문했을 때 겪은 대동강맥주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그해 10월 두 번째 방북 때 만난 북측 안내원은 석 달 전 시작된 경제개혁(7·1경제관리개선조치)의 핵심이 ‘선택과 집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는 대동강맥주 등 대여섯 개의 맥주공장이 있습니다. 이들 공장에 국가가 ‘종자돈’을 주고 경쟁을 하게 한 뒤 생산성과 창발성(창의성)이 뛰어난 곳을 골라 집중 지원하고 외자를 우선적으로 배분할 계획입니다.”

대동강맥주는 영국에서 수입한 중고 설비로 그해 4월부터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 마지막 방북 때까지 평양 시내 곳곳에 ‘대동강맥주’라는 간판을 단 우리식 호프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이에 비해 1931년 일제가 세운 북한 내 대표적인 중화학공업 시설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는 지금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통일부에 따르면 원료와 에너지가 부족하고 시설이 낙후돼 생산량이 원래 생산능력의 20∼30%에 불과하다.

비료 지원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남한 당국자들은 “거의 폐허에 가깝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도 비료 30만 t을 얻기 위해 남한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판이다.

대동강맥주와 흥남비료연합기업소의 희비는 북한 경제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국가의 선택을 받은 일부 기업만 살아남고 나머지 기업은 거의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부 돈 가진 인민을 노린 시장과 군수부문 외에 전반적인 공업과 경제가 전멸한 상태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북한은 대동강맥주로 인민들을 비참한 현실에서 잠시 동안 도피하게 할 수는 있지만 술 공장만으로 무너진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없다.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가 높은 비료공장 등 중화학공업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은 핵을 버리고 경제를 과감하게 개혁 개방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북한이 살길은 그것밖에 없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