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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천광암]헝그리정신 없는 日 휴대전화 실패의 교훈

입력 | 2008-03-14 03:00:00


‘휴대전화 선진국’이라는 일본인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는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스웨덴 에릭손과 합작으로 휴대전화를 생산해 온 소니는 최근 일본 내 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미쓰비시전기는 3일 휴대전화 사업에서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2000년 이 회사의 연간 출하량은 1850만 대였지만 지금은 210만 대로 줄었다. 미쓰비시보다 점유율이 앞서는 산요전기도 다음 달 휴대전화 사업을 통째로 교세라에 넘길 예정이다.

교세라도 속이 쓰릴 대로 쓰린 상태다. 교세라는 2001년 중국의 전자부품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중국 시장을 공략해 왔으나 ‘완전 실패’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달 말까지 철수하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합작회사 지분은 모두 합작 파트너 등에 공짜로 넘기는 ‘빈손 철수’다.

이로써 세계 최대의 황금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순수 일본계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도시바와 마쓰시타전기는 2005년, 미쓰비시와 NEC는 2006년 이미 짐을 쌌다.

일제 휴대전화의 위상이 지지부진한 곳은 중국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세계시장 점유율 10위 안에 들어가는 순수 일본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반면 한국의 삼성전자는 지난해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으며 LG전자도 5위를 달리고 있다.

품질과 기술에 있어서 유럽이나 한국 기업들에 손색이 없다는 일본 기업들이 참담하게 몰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전문가들은 ‘두 가지 차이점이 한국과 일본 업체의 승부를 갈랐다’고 입을 모른다.

첫째, 일본 업체들은 ‘고품질’에 대한 집착이 강해 중국과 인도 등 저가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 둘째, 일본 기업들에는 비옥한 국내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객지생활’이 조금이라도 고달프면 짐을 쌌다. 반면 국내 시장이 협소한 한국 업체들은 해외 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한국 기업들은 약점 때문에 성공했고, 일본 기업들은 강점 때문에 실패한 셈이다.

요즘 세계 금융시장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을 비롯해 한국 경제는 갖가지 악재에 직면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일 휴대전화업계의 명암을 깊이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헝그리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악재가 있다고 지레 움츠러들 이유는 없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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