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보안청은 그동안 평화헌법의 족쇄에 묶인 해상자위대를 대신하는 사실상의 군사조직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2004년 10월 도쿄 만에서 열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4개국 합동훈련에 참여한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무기 밀거래 의심을 받는 선박을 정지시켜 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1년 12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은 정지 명령을 거부하는 북한 선박에 경고 사격을 했다. 이 선박이 중국 쪽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도주하자 선체를 사격해 정지시켰다. 양측 간에 총격이 오가면서 이 선박은 결국 격침됐다. 타고 있던 북한인 15명도 사망했다. 해상보안청에 발포권을 부여하는 교전규칙이 개정된 지 불과 1개월 만의 일이었다.
#2008년 현재 해상보안청은 동아시아 해상안보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말라카해협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훈련을 실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한다. 물론 독도와 댜오위(釣魚) 섬(일본명 센카쿠 열도) 등 분쟁지역에 출몰하는 선박도 해상보안청 소속이다.
냉전 종식과 9·11테러 이후 일본 해상보안청이 평화헌법에 발이 묶인 해상자위대를 대신해 사실상 일본 방위의 최전선에서 ‘제4의 군(軍)’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국제안보저널 ‘인터내셔널 시큐리티’ 최신호가 지적했다. 필자는 리처드 새뮤얼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해상보안청은 1948년 해상치안 확보를 위해 교통성 산하에 설립한 경찰조직이다. 하지만 일본은 2000년 해상보안청의 영문 명칭을 기존 ‘Maritime Security Agency’에서 ‘Japanese Coast Guard’로 바꾼 뒤 조용히 몸집을 키워왔다.
일본이 모델로 삼은 것은 미국 해안경비대(US Coast Guard). 1790년 창설된 미 해안경비대는 군사와 경찰 기능을 함께 가진 조직으로 육·해·공·해병대에 이은 ‘제5의 군’ 역할을 한다. 주변국 해군 수준의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
해상보안청은 그동안 해난구조와 해상치안이라는 주요 임무 외에 해상수송로 안전 확보, 해적 소탕, 대테러작전 등을 추가로 수행했다. 예산도 지난 40년 동안 10배가량 늘었다. 16억 달러에 이르는 해상보안청 예산은 해상자위대의 17% 수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방위청 예산은 삭감됐지만 해상보안청 예산은 계속 증액됐다. 2005년 새 함정 21척과 제트기 7대 신규 구입 예산을 확보했고 2006년엔 실시간 선박위치파악 장비를 갖춘 걸프스트림 제트기 2대와 야간투시 능력을 갖춘 무장 순시함 2척을 구입했다.
일본의 방위비 예산이 1967년 이래 국내총생산(GNP)의 1% 상한선에 묶인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여야는 주변국의 의심을 살 방위비 증액 대신 해상보안청 예산을 늘리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해상보안청은 이제 총 14만5000t에 이르는 함대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중국 해군 수상함 총 23만7000t의 60% 수준에 이른다. 해상자위대 구축함 수준의 최첨단 장비를 갖춘 순시선과 공중조기경보기 등 각종 항공기도 보유하고 있다.
산하 대테러 특수부대인 ‘특수경비대’는 미 해군 특수부대 SEAL의 훈련을 받는다.
해상보안청 함정은 어뢰나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한적인 전투수행 능력을 갖고 있다. 정밀유도 무기체계와 대잠수함 무기 등 무장능력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일본 헌법은 전쟁 포기와 함께 ‘센료쿠(戰力·전력)’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데도 해상보안청은 2006년 연례보고서에서 ‘새로운 전력’ 확보를 자랑하는 등 역할 확대를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상보안청 확대의 근거로 동중국해 가스전 등 분쟁 지역에 대한 안보 우려를 들고 있다.
새뮤얼스 교수는 “해상보안청이 이제 경찰이 아닌 군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해상보안청이 해상자위대 개입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