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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산책]태권도의 道는 전자호구에 물어라?

입력 | 2007-10-12 03:03:00


태권도 선수들은 요즘 힘을 더 많이 쓴다.

제88회 전국체육대회 태권도 경기가 열리고 있는 광주 다목적체육관. 점수판은 대부분 0-0이었다. 응원단에서 ‘와’ 하는 함성이 쏟아져도 점수판은 별 변동이 없다. 치열한 경기 끝에 승부는 1-0이나 2-1 정도로 끝났다. “이럴 바엔 가위 바위 보로 하는 게 낫겠다”는 극언도 들렸다.

전자 호구를 둘러싼 풍경이다. 태권도는 그동안 판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없애기 위해 이번 전국체전에서 전자 호구가 처음 사용되고 있다. 몸통을 감싸는 호구에 붙은 센서가 자동으로 점수를 매겨 준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점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더 많은 힘을 줘 상대를 가격한다. 힘이 더 드는 이유다. 센서를 달고 있는 전자 호구는 무게도 기존 호구보다 300g 정도 무겁다. 대부분 스피드 저하와 체력 부담을 호소했다.

그러나 전자 호구를 배급하고 있는 FP 라저스트사의 이희익(41)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과학적으로 검증을 거쳤다. 발등으로 정확하게 가격할 때 점수가 올라간다. 선수들이 전자 호구에 맞는 정확한 가격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가격할 때 발등이 아닌 발 안쪽으로 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어쨌든 판정 시비는 많이 줄었다. 울산 남대부 박재완(37) 코치는 “혁신적이다. 과거에는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오곤 했는데 그런 부분이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자 호구가 판정 시비를 완전히 줄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 얼굴 부분 때문이다. 얼굴 쪽에는 센서가 없다. 얼굴 가격은 여전히 심판들이 점수를 매긴다. 얼굴 가격이 가장 점수가 큰 데도 말이다.

이 대표는 “얼굴 쪽도 센서 개발은 끝났다. 하지만 얼굴과 머리의 급소에 센서를 붙일 경우 위험한 부분을 가르쳐 주는 모양이 돼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 호구에 대한 말이 많은 데 대해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설문조사를 하는 등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호구의 기계적 결함은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신뢰의 위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박 코치는 “전자 호구까지 도입한 뒤에도 판정 시비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더 갈 곳이 없는 위기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격 수양을 추구하는 도(道)를 내걸고 있는 태권도. 그러나 서로 믿지 못해 살얼음판이다. 전자 호구의 도입은 태권도의 위기를 상징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이 자주 들렸다.

광주=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