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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학,건축이야기 20선]낙천주의 예술가

입력 | 2007-06-18 02:59:00


눈만 뜨면 집 이야기뿐이고 집 문제로 정권이 흔들거릴 정도다. 집에 대한 발언권은 정치인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이 독점했으니, 그들의 말에는 집을 돈으로 환산한 숫자 놀음뿐이지 진짜 집 이야기는 빠져 있다. 나는 그 ‘진짜 집 이야기’를 다니엘 리베스킨트에게서 들었다. 그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9·11테러로 파괴된 자리에 들어서는 새 집을 설계한 건축가다.

리베스킨트는 어렸을 적 음악 신동이었지만 생활고로 예술가의 길을 포기한다. 그림에 대한 재능도 뛰어난 그가 앞길을 고민할 때 어머니의 말은 결정적 등대 역할을 한다. “건축가가 되어라. 건축은 돈 되는 장사지만 예술이 되기도 하지 않니. 예술가는 건축을 못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

건축은 예술과 기술이 겹치는 데에 서 있지만 줏대 없는 경우에는 양쪽으로 크게 흔들거린다. 리베스킨트가 기술자와 다른 부분은 건축에 깃드는 영혼과 역사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건축의 실용성을 외면할 리 없겠지만 그는 유독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주목하는 건축가다. 첨단 설계 장비를 동원해 능률과 실질을 계산하기보다 건물의 의미, 장소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과 아널드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위대한 무용가를 초대해 중력에 저항하는 예술혼을 배우기도 하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평범한 보도블록과 마들렌에서 영감을 얻었듯 강화 콘크리트와 쇳덩어리에서 영감을 얻곤”했던 태도 덕분에 장사꾼과 기술자와 예술가를 하나의 몸뚱이에 깃들게 할 수 있었다. 특히 9·11테러로 폐허가 된 장소로 찾아가 물이 흥건히 고인 거대한 바닥에 직접 내려간 뒤에야 설계의 영감을 얻었다는 대목은 감동적이다. 지하 7층 깊이까지 내려가 ‘건물을 무너뜨린 폭력과 증오’, 동시에 ‘자유와 희망과 믿음’과 같은 인간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감지한 뒤 차가운 벽에 손을 대자 마침내 계시를 느꼈다는 대목에서 진정한 예술가, 혹은 장소의 정령과 접신하는 사제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의 말처럼 도시가 인간의 꿈과 역사로 이뤄진 것이라면 반만년 동안 우리가 몸담고 살았던 곳에 장소의 정령이 없을 리 없다. 관료가 모눈종이에 자를 대고 그은 곳에 직접 발을 딛고 흙냄새라도 맡아 보는 예술가가 있다면 이 황량한 도시가 조금 나아질 것 같다. 혹은 대대손손 살아온 터전을 곧 들어설 콘크리트 더미에 내주어야 하는 늙은 농부의 손을 잡고 느티나무에 얽힌 사연에 귀 기울다면 토목 공사판이 예술로 변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집을 집으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안내서이다. 혹은 한 세기의 역사와 예술을 두루 성찰하는 사려 깊은 철학자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