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와 농림부 사이의 정책광고 사전협의 내용. 농림부의 최종안은 결국 사전협의 과정을 거쳐 국정홍보처 시안으로 결정됐다. 자료 제공 국정홍보처
국정홍보처가 정부 각 부처 및 기관과 정책 광고 및 정책 발표와 관련해 실시하고 있는 사전협의제를 통해 광고 시안에 대한 추천은 물론 보도자료의 내용과 문구(文句) 위치까지 제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11일 홍보처에서 제출받은 홍보처와 각 부처 간의 ‘사전 협의 및 검토의견’ 자료에 따르면 각 부처는 사전 협의 과정에서 나온 홍보처 의견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해 왔다.
홍보처는 사전협의제가 ‘효율적 홍보를 위한 당연한 협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제도가 정부의 정책 홍보관리 평가에 포함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론 ‘협의’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홍보처 안(案)으로 결정”=4월 13일 농림부는 ‘우리 축산업 저력 다시 한번 보여줍시다’란 제목의 정책 광고 사전협의안을 홍보처 E-PR 시스템(정책홍보종합시스템)에 올렸다.
그 후 농림부는 자체 안 2개와 홍보처 의견을 반영한 시안 2개 등 시안 4개를 마련해 검토를 요청했고 홍보처는 이에 대해 ‘홍보처 2안과 농림부 2안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농림부의 광고는 결국 홍보처 2안으로 결정됐다.
같은 달 20일 사전 협의를 요청한 관세청의 ‘세관 선진화 추진’ 광고는 △관세 국정의 수호자 △원활한 무역활동 환경 조성 △위조 상품 집중 단속 등이 당초 주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홍보처는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분위기를 감안해 ‘FTA로 원활한 무역활동과 기업하기(가) 좋아졌다는 내용(을) 포함해 줄 것’을 요구했고 관세청은 이를 반영한 시안을 다시 제작했다.
▽“분석 결과는 앞쪽에 배치”=정책 발표 사전협의 과정에서는 보도자료 작성 시 문구 위치 지정은 물론 언론의 비판을 차단하는 방법까지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건설교통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실행 전략’ 보도자료의 경우 홍보처는 ‘내년 9월부터 대구 울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착공된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울 것’과 ‘해당 지역의 투기 대책과 지가 동향을 함께 제시해 비판 논리를 차단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1월 과학기술부의 ‘2006년도 국가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결과’ 발표에 대해선 ‘평가 자체보다 평가의 실질적 내용이 주요 메시지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의 비교 순위가 핵심 메시지로 적합’이라고 제시했다.
또 보도자료 작성 시 ‘OECD 국가와 비교 분석 결과 등을 앞쪽에 배치하고, 지표 개발에 관한 내용은 뒷부분에 제시할 것’과 ‘비전 2030과의 연계 홍보 방안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국세청의 ‘고액성실납세자 및 가족에게 출입국 전용 심사대 우선 이용 혜택’ 발표의 경우 홍보처는 ‘예상쟁점 관리 의견’을 통해 ‘고액납세자만 혜택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음. 기존 고액납세자 이용 심사대 실적 저조 등의 보도를 참고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협의라는 이름의 통제”=박찬숙 의원은 이 같은 사전협의제에 대해 “홍보 협의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전협의제가 기관 평가점수에 반영되는 상황에서 해당 부처가 홍보처 추천안을 무시할 수 있겠느냐”며 “보도자료 문구 위치까지 지정하는 홍보처의 행위는 협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홍보처 E-PR 시스템 내 정책발표사전협의 현황란에는 54개 부(部) 처(處) 청(廳)과 함께 서울시 등 16개 지방자치단체 코너도 마련됐다. 아직까지 지자체는 사전협의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처리 결과는 기입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홍보처의 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의원은 “올해 1월부터 정책 광고 사전협의 대상이 각 부 처 청 및 위원회에서 별정우체국연합회(정보통신부 산하), 88관광개발(국가보훈처) 등 각 부처 산하 106개 단체까지 확대됐다”며 “결국 정부와 관련 있는 모든 단체의 광고와 정책 발표에 관여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홍보처는 “사전협의 제도는 각 부처의 정책홍보를 지원하고, 협력 조율하는 제도”라며 “부처 통제용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