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렁각시는 알까?/이동하 지음/268쪽·9000원·현대문학
10년 만의 새 책 소식이다. 소설가 이동하(65) 씨의 단편집 ‘우렁각시는 알까?’.
이동하 씨는 6·25전쟁의 상처부터 현대인의 평온한 일상 뒤 그늘을 잡아내기까지, 우리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소설을 빚어 온 작가다. 다작보다는 내실 있는 작품을 지향해 온 그가 오랜만에 낸 새 소설집도 깊은 고민으로 가득하다.
책에 묶인 아홉 편의 단편에는 모두 우리 사회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앙앙불락’은 평범한 중년 사내 이야기다. 학교의 교감인 화자는 어느 날 불명예 퇴직한 남자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고 욕질을 당한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변을 당한 것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데,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수?”라고 물어 화자를 당혹하게 한다. 제대로 답을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는 “오늘 우리가 갈라서기로 한 날이오!”라고 벌컥 소리 지르고, 남자는 그제야 그날이 결혼기념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산에 올랐다가 등산객들의 말싸움에 휘말리게 되자 화자는 “인생이 온통 앙앙불락(怏怏不樂)”이라고 한탄한다. 돌아오는 길에 트럭이 덜컥 서버려 옴짝달싹 못한다는 사내에게 붙들려 ‘아예 하루가 봉변으로 끝나려나 보다’ 했는데, 이 사내가 들려주는 얘기가 명언이다. “그게 세상사는 일이지요, 뭐.” 환갑이 훌쩍 넘은 작가는, 이렇게 봉변 많은 하루도 인생에 속한 것임을 따뜻한 필치로 알려준다.
작가의 눈으로 보기에 현대는 비정한 곳이다.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가 부실공사한 아파트가 무너져 죽어버린다든지(‘누가 그를 기억하랴’), 순한 택시운전사가 누렸던 잠깐의 행복조차 한순간에 빼앗기고(‘우렁각시는 알까?’) 정년퇴직한 가장은 아내와 자식에게서도 멀어져 외톨이가 돼 버리는(‘남루한 꿈’) 등 성실한 삶에 대한 대가로 우울함과 씁쓸함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차갑게 묘사하는 대신, 애잔하고 따스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감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