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중기대출 껍질 벗겨보니, 주택담보 개인대출

입력 | 2007-06-02 03:02:00


중기대상 주택담보대출 18조원 중 상당수 차지… 은행들 편법 묵인

2월 초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 한모(37) 씨는 같은 달 말 시세 8억5000만 원인 서울 강남지역 31평형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6억 원을 빌렸다.

소득에 따라 대출이 제한되는 가계주택담보대출과는 달리 중소기업대출을 이용했기 때문에 시세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중소기업대출 가운데 가계주택대출처럼 아파트나 일반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 18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초 집값 안정을 위해 각종 가계주택대출 규제 조치를 내놨지만, 적지 않은 대출 수요자들이 규제가 덜한 중소기업대출로 정상 수준 이상의 대출을 받은 셈이다.

본보가 1일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담보 및 용도별 중소기업대출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주택을 담보로 한 중소기업대출은 3월 말 현재 18조2000억 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1조2000억 원 증가했다.

○ 편법 대출 알고도 눈감아 줘

중소기업대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본보 취재팀은 지난달 30일 신한은행을 찾아가 개인사업자대출을 받고 싶다고 했다.

조만간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할 예정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본동의 27평 아파트(시가 4억9750만 원)를 담보로 잡겠다고 말했다. 또 아직 사업자 등록은 안 했다고 했다.

은행 직원은 “사업자 등록은 구청에서 쉽게 할 수 있으니 등록증만 만들어 오라”며 “시세의 75%인 3억7000만 원을 6.1% 변동금리로 대출해 주겠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중소기업 대출로 부동산을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직원은 “당국이 편법대출 조사를 하고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친절한’ 상담도 해줬다.

이날 국민은행 창구에서도 같은 조건으로 대출상담을 한 결과, 주택을 담보로 중소기업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 직원은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각종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소득이 없으면 5000만 원밖에 대출해 줄 수 없지만 중소기업대출로는 3억6000만 원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중소기업대출 후 6개월 안에 제출하는 사업 운영자금 내용이 부실하면 조기 상환될 수 있지만 담보를 확보한 은행이 심사를 까다롭게 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 주택담보 중기대출 18조 원 넘어

주택담보 중소기업대출은 2005년 말 14조2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 17조 원으로 늘어난 뒤 최근 18조 원 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4월 주택투기지역의 6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40% 적용제도가 시행된 뒤 가계주택대출은 감소한 반면 주택담보 중소기업대출은 급증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1∼3월) 중소기업대출 증가액 1조2000억 원은 같은 기간 가계주택대출 증가액(1조2045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올 3월에는 중소기업대출이 5000억 원 많아진 반면 가계주택대출은 438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대출 자금의 대부분이 사용처를 확인하기 힘든 운영자금 명목으로 집행된다는 점도 문제다.

3월 말 기준 전체 중소기업대출 317조2000억 가운데 운영자금은 251조1000억 원으로 시설자금(66조1000억 원)의 3.8배 수준이었다. 2005년 말 기준으로는 시설자금이 운영자금의 4.2배 수준으로 많았다. 최근 중소기업대출이 설비 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체계적 신용평가 없으면 중기대출 부실 우려’

주택을 담보로 한 중소기업대출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대출을 받아간 업종이 부동산 관련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작성된 금감원의 ‘업종별 중소기업대출금 현황’에 따르면 건설·부동산업에 76조9000억 원(전체 중소기업대출의 24.8%)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중소기업대출을 늘린 은행들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말 1.1%에서 올해 3월 말 1.3%로 높아졌다. 금감원은 4월 연체율은 3월보다 더 높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각 은행의 개인 사업자 대출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신용평가방식도 정교하지 못해 부실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의 무리한 기업 대출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가계대출 남발로 2002년 카드 대란(大亂)이 있었다”며 “신용평가 역량을 키우고 부실 대출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