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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 추천 ‘중년이 설에 듣기 좋은 노래’ 10곡

입력 | 2007-02-10 02:54:00

가수 박상민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선글라스로 유명한 그는 인터뷰가 팬들을 위한 설날 세배처럼 느껴진다며 색이 없는 안경을 썼다. 원대연 기자


《‘한때 밤잠을 설치며 한 사람을 사랑도 하고/

삼백예순하고도 다섯 밤을 그 사람만 생각했지/

한데 오늘에서야 이런 나도 중년이 되고 보니/

세월의 무심함에 갑자기 웃음이 나오더라.’

가수 박상민(40)의 11집 앨범에 수록된 ‘중년’의 한 구절이다.

한 사람-밤잠-삼백예순다섯-중년-세월의 무심함….

이런 단어가 가슴에 콕콕 박힌다.

중년 세대. 직장이나 가정에서만 겉도는 게 아니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마땅히 듣거나 부를 노래가 없다.

그 어느 해보다 짧은 설 연휴다.

귀성길 교통체증이 눈에 선하다.

이번에는 고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당신의 청춘과 함께했던 노래를 마음껏 들어 보자.

아이들에게는 노래에 담긴아빠 엄마의 사연을 들려주자.

어느덧 중년의 대열에 합류한 박상민이 설을 앞두고 ‘중년을 위한 추억의 노래’10곡을 추천했다.

노래에 젖어 고향과 가족, 학창시절 친구를 떠올리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는 희망과 함께.》

♬ 못다 핀 꽃 한 송이(김수철)

김수철 음악의 최고봉 중 하나. 주류 록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가 고교 때 가발을 쓰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했던 시절 부르던 노래다. 이 노래를 제대로 연주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아마추어 밴드에서는 쉽지 않았다. 이 곡을 소화해야 실력 있는 그룹의 보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 열심히 불렀다. 첫 멜로디를 들으면 합승택시와 1000원이 떠오른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보수도 없이 매일 합승택시 요금 1000원을 받았다.

♬ Bad Case of Loving You(로버트 팔머)

고교 시절 활동한 밴드 이름은 ‘더 매독스 밴드’. 매독균처럼 독한 음악을 하겠다는 주장이었다. 에이즈가 알려지기 전이었다. 에이즈를 알았다면 ‘에이즈 밴드’?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엉뚱했다. 학교 가요제에서 이 노래로 대상을 탔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한 울타리에 남녀 중고교 4개교가 있어 재학생이 5000명을 넘었다. 여고생들이 수줍은 듯 다가서며 건넨 쪽지. 인기의 위력을 실감했다.

♬ 제2의 고향(윤수일)

나의 환상적인 무대 매너를 잉태시킨 곡. 이 노래를 거울 앞에서 부르며 무대 매너를 연구했다. 윤 선배의 외모와 매너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1980년대는 많은 그룹이 활동한 ‘가요계의 르네상스’였다고 생각한다. 각 장르의 다양한 음악이 공존했고 수많은 명곡이 탄생했다. ‘제2의 고향’은 상상력의 보고(寶庫)였다.

♬ 어머님의 자장가(사랑과 평화)

탁월한 멜로디와 연주 기량이 세련되게 결합된 명곡. 그룹 사운드로 음악에 입문했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는 내게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나 어릴 때 항상 듣던’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로 꼽는다. 커다란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이 노래를 크게 틀면 그걸로 ‘짱’이었다. 지금은 유치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당시엔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 Living Next Door to Alice(스모키)

1970년대 음악다방을 강타했다. 한국인을 위한 팝의 전형이다. 여름방학에 해변에서 불렀던 나의 주제가.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발음이지만 박수를 얻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고등학생인데도 이 곡을 부르면 ‘대학생 누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 다음은 비밀이다.

♬ 모두 다 사랑하리(송골매)

대학가요제에 나온 음악은 내가 연주하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배철수 구창모 선배가 활동한 ‘송골매’는 이런 대학 가요의 음악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 슈퍼 그룹이었다. 아마추어 학생 밴드의 연주 목표곡이 가장 많은 그룹이었다. 특히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연주하면 뭇 여학생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 종이학(전영록)

청춘의 감성을 자극한 최초의 노래. 이 노래를 계기로 여자 친구에게서 종이학 1000마리 받기를 갈망하는 남학생이 부쩍 늘었다. ‘종이학’은 미덕도 있지만 해악도 컸다. 남학생들은 종이학을 못 받아 ‘열 받고’, 여학생들은 만드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 종이학 때문에 ‘깨진’ 커플을 여럿 목격했다. 종이학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아무래도 못 받은 자의 변명인가.(^^)

♬ 사랑했어요(김현식)

고(故) 김현식 선배가 남긴 불후의 명곡. 언제 들어도 슬프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들을 때마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와 가수의 힘을 느낀다. 군대에 가기 전인 20대 초반 때 김 선배가 소속된 ‘현 스튜디오’에서 신인 그룹 ‘빨간 주사위’ 멤버로 있었다. 김 선배의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맹연습하던 시절 즐겨듣던 노래다. 이 곡을 들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에 잠긴다.

♬ 그 겨울의 찻집(조용필)

아름다운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로 추억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노래가 워낙 좋아 애창하는 곡이다. 정식 콘서트가 아니라도 노래할 기회가 있으면 무반주로도 노래할 정도다.

♬ 중년(박상민)

이번에 발표한 11집 앨범 ‘울지 마요(Don’t Cry)’에 수록된 곡이다. 흐르는 세월을 잊고 살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이들의 심정을 담았다.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이전에 발표한 곡들과는 음악적 방향이 달라 고민했다. 그러나 마음에 와 닿는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 앨범에 싣기로 했다. 얼마 전 성수대교를 건너며 이 노래를 듣다 왈칵 울었다. 가수들, 자기 노래 듣다 자주 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나이가 드니 사랑 노래도 그 무게를 알 것 같아요”▼

1993년에 데뷔한 박상민은 한국의 40대와 여러모로 느낌이 통하는 가수다. ‘멀어져 간 사람아’ ‘청바지 아가씨’ ‘무기여 잘 있거라’ ‘비원’ 등으로 같은 세대의 정서를 표현했다.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온 가수다. 애절하고 친근한 멜로디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린다. TV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친근함과 선글라스, 수염 등 ‘비주얼 코드’로 다양한 연령대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 ‘매독스’와 설날, 선글라스

안경에 색을 칠한 ‘짝퉁’ 선글라스를 낀 평택의 한 고교생. 20여 년 전에도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끼고 거리를 누볐다.

그가 소속된 팀은 ‘더 매독스 밴드’였다. 독한 음악을 하겠다는 고교생들의 야무진 욕심과 장난기가 발동한 이름이다. 그의 설날은 바빴다. 돈은 궁했지만 세배는 뒷전이었다. 모처럼 동네 콩쿠르에서 연주와 노래 실력을 뽐내야 했기 때문이다.

“쌀집 막내, 노래 잘 하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쌀가게를 했다.

쌀집 막내는 이제 선후배 가수 사이에서 ‘노래하는 박 기사’로 불린다.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노래와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술에 취한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거처를 서울로 옮긴 부친은 지금도 1주일에 4차례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 박상민의 선물

그는 최근 출시된 11집 앨범이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음반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어서 가수가 새 앨범을 내는 것은 모험이 됐다. ‘싱글’만 내거나 음반을 포기한 채 온라인 음악 시장에만 주력하겠다는 가수들도 나온다.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만 앨범에 관한 한 고집을 부리고 싶습니다. 내 음악 인생의 한 매듭을 정리하고 팬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차원에서도 필요합니다.”

이번 앨범은 정서적으로 슬픔이 더욱 두드러진다. 애절함 속에서도 세태를 풍자한 흥겨움과 경쾌함이 묻어나왔던 과거에 비해 한결 원숙해졌다는 평가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 삶이란 단어가 더욱 깊숙이 다가옵니다. 똑같이 사랑을 노래해도 이제 정말 그 무게를 알 것 같습니다.”

타이틀 곡 ‘울지 마요’는 20대가 휩쓸고 있는 TV의 가요 순위프로와 음반 판매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요즘 젊은층 위주의 가요 프로는 ‘음악 편식’이 너무 심합니다. 가요 프로에 출연했다가 내 또래 가수가 혼자라는 것을 알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얼마 전 생방송에서는 노래를 부르다 간주가 흐르는 사이에 생일을 맞은 젊은 MC에게 “축하한다”며 1만 원을 건네 방송 스태프와 MC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오락프로 출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는 그의 소문난 애드리브와 재치다.

“아버지, 이번 설은 TV 출연 때문에 제대로 세배하기도 어려울 것 같군요. 막내가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손자를 안겨 드려야 할 텐데….”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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