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교육 제도 하나를 고치는 데도 5년은 짧다. 제도가 아닌 교육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논란이 벌어지면 어떨까. 5년은 논의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도 짧다. 교육은 그만큼 보수적인 데가 있다. 그런데 5년 사이에 교육방향이 잘못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전환을 시도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일본발 ‘여유 있는 교육’의 등장과 퇴출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답지 않게 빠른 궤도 수정
2002년 4월 1일 일본의 국공립 초중고교는 세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매주 토요일에 쉬는 ‘주5일 수업’이 전면 도입됐다. 수업량은 30%나 줄어들었고 내용도 쉬워졌다. 그 대신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종합학습시간’을, 고교는 ‘학교설정과목’을 대폭 늘렸다. 우리로 치면 학교장 재량시간이다.
일본 정부는 변화의 필요성을 ‘여유 있는 교육’과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남는 시간엔 취미활동이나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채 안 된 지금은 어떤가. 학생들은 ‘여유 있는 교육’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을까. 결과는 정반대다.
일본 정부는 요즘 하루 수업시간의 확대, 평일 방과 후와 토요일 보충수업 실시, 종합학습시간과 여름방학 단축 등을 통해 ‘잃어버린 수업시간’을 되찾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 곧 ‘여유 있는 교육’을 폐기하고 그 이전의 수준으로 교육시간과 교육량을 늘릴 예정이다. 걸림돌은 없다.
일본이 채 5년도 안 돼 ‘불확실한 미래’의 청사진을 접으려는 것은 각종 국제학력조사에서 일본 학생들의 성적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서다. 일본은 그 원인을 ‘여유 있는 교육’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해 5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여유 있는 교육’이 학력 저하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79.8%가 ‘그렇다’거나 ‘대체로 그렇다’고 응답했다.
일본의 궤도수정이 옳은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답지 않은 ‘결정의 신속성’과 극히 일본다운 ‘일사불란한 합의’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교육철학을 5년도 안 돼 거둬들이는 과감성과 이처럼 큰 전환을 하면서도 논란이나 책임론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담대함이 놀라울 뿐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동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위기감’이 가장 근접한 대답일 것이다. 이대로 교육을 방치했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우리라고 위기감이 없는 게 아니다. 글로벌 경쟁의 비정함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육의 방향 수정은 어렵고, 사회적 합의는 더더욱 어렵다. 그 이유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이 정치에 오염됐기 때문이다.
고치는 것조차 힘든 우리의 교육
요즘 벌어지고 있는 모든 교육 논쟁은 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의 충돌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명백하게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수월성을 실현하는 최적의 방법이 ‘자율’이다. 원하는 학생을, 원하는 방법으로 뽑아, 원하는 교육과정으로 가르치는 게 교육의 자율이다. 국가는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자율로 인해 소홀해지는 ‘교육의 보편성’은 재정과 행정지원으로 보완하면 된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현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교육의 보편성’을 강요하면서 통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율의 싹을 싹둑싹둑 잘라내고 있다.
어느 분야든 무오류는 없다. 우리 교육도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차선의 방법은 빨리 고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행정과 발상의 경직성 때문에 그조차 힘들다. 일본이 ‘여유 있는 교육’을 퇴출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교육의 ‘여유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