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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문병기]‘김계관의 여유’ 내년에도 가능할까

입력 | 2006-12-26 02:56:00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23일 본보 기자와 만난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시종 느긋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6자회담 때마다 기다리는 취재진을 따돌려 온 북한 대표단이 남측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선선히 응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김 부상은 본보 기자를 제지하는 수행원들을 비켜서게 한 뒤 10여 분간 자리에 서서 자세히 답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김 부상은 22일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영어 순차통역을 동원해 취재진의 질문에 덕담까지 건네며 상세하게 답했다. 금융제재 해제 전엔 핵 동결 논의를 못 한다며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승자의 여유’마저 엿보였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뒤 외교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대북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점을 이용해 미국에서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북한의 ‘허장성세’와 ‘벼랑 끝 전술’이 이번에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희망대로 ‘핵 동결 보장’도 아닌 ‘핵 동결 논의’를 위해 금융제재를 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더욱이 지금까지 북한에 늘 유리하게 작용해 왔던 ‘시간 끌기’가 더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없는 상황. 6자회담 재개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가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김 부상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금융제재 해제 하나로 단번에 핵동결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협상 카드를 잘게 쪼개 단계별로 보상을 받아 내려는 북한의 전통적인 수법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법이 통했던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와 작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이 버티기 전략을 고수할 경우 ‘6자회담 무용론’이 힘을 얻어 외교적 협상 채널마저 닫힐 수도 있다.

김 부상 같은 외교전문가들이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군부 등 강경파를 설득하는 것이 그나마 북한이 실리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이다.

문병기 정치부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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