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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의 만화방]양영순의 ‘천일야화’는 마음병 치료제

입력 | 2006-12-02 03:01:00


우주적 상상력을 지닌 대한민국 만화보(漫畵寶) 양영순이 동양문학의 보고 ‘아라비안나이트’를 만화로 옮겼다.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던 ‘1001’의 출판본으로 만화독서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불러낸 작품이다. 세로의 깊이를 적극적으로 활용(인터넷 만화는 위에서 아래로 페이지를 이동한다)한 연출, 아르누보풍의 굵은 선화와 장식미 등 시각적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 요법’이라는 설정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아라비안나이트는 군신의 딸 셰에라자드가 국왕 샤리아르에게 1001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처형을 면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 이른바 액자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양영순은 이를 요즘 유행하는 독서치료(bibliotherapy) 중 한 분야인 ‘이야기 치료’ 과정으로 설정한다. 두 사람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로 두고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통해 국왕의 병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그대로 서사만화가 지닌 이야기 치료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제시이자 임상 사례로도 읽힌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통해 끄집어 낸 등장인물에게 문제를 제시한다. 샤리아르는 등장인물과 동일시되거나 공감하면서 문제에 대한 접근 태도와 해결 방법을 자각한다. 타인의 경험을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통찰력과 가치관을 형성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원안이 된 아라비안나이트는 19세기에 집대성된 리처드 버턴 판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려 169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양영순은 여기서 6개의 이야기를 골라 만화로 꾸몄다. 신드바드의 모험이나 알라딘의 램프, 알리바바와 도적처럼 익숙한 이야기는 제외됐다. 그래서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아라비안나이트를 대중의 입맛에 맞춰 극화한 다이제스트판이 아니라 이야기 치료를 소재로 한 창의적 서사만화가 된다.

이야기 치료에서 카타르시스는 정화 또는 배설로 해석된다. 정화가 감정의 순화라면 배설은 억압의 분출이다. 양영순은 10여 년 전 ‘누들누드’라는 연작 단편 만화를 통해 배설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독자는 이를 통해 갑옷보다 무거운 성적(性的) 금기를 벗어던졌으나 그 덕분에 양영순은 4쪽짜리 만화에 갇혀 10여 년을 보내야 했다. 그는 독자에게 번득이는 자극을 주었지만 서사극이 전달하는 통찰과 해법을 주지 못했다. 이 작품의 창작이 그 스스로의 문제도 치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석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