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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지혜의 숲]그리스인들의 발명품 ‘정확성’

입력 | 2006-11-28 03:02:00


제국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등쌀에 위기를 느낀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를 부르짖었다. 자기네들을 괴롭히는 서양인들이 가진 것은 오직 기술이니 그것만 배우면 될 것이요, 자신들의 정신과 도 자체는 서양인들보다 우월하니 그것은 계속 유지하자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체(體) 없이 용(用)이 나오고 도(道) 없이 기(器)가 나올 것으로 착각한, 무지의 소산이었다.

싸움이라 하는 것은 일진일퇴가 있는 것이고, 하다 못해 축구 경기를 해도 한국이 브라질을 이길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은 어찌된 일인지 서구 제국들에 의해 철두철미 체계적으로 농락당하기만 했다. 이들 대륙이 수모를 당한 이유야 여럿이 있겠지만 필자에게 이야기하라면 단 하나, ‘정확성(akribeia)’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성이란 때로는 발휘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덕목 중 하나가 아니다. 그건 바로 그리스인들의 발명품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도)임을 밝히라고 하면, 가령 여러 삼각형의 내각을 재보고 거의 다 2직각에 가까우니까 결국 2직각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2직각이 아닌 삼각형이 나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게 되므로 제대로 된 증명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꼭짓점을 지나며 밑변에 평행인 직선을 긋고 삼각형의 양 밑각은 직선상의 꼭지각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각과 같음을 보임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된 증명이 된다.

삼각형의 각들을 일일이 재는 방법도 ‘대충’은 맞다. 그러나 ‘대충’에 만족하지 않고 ‘그렇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을 한사코 찾은 것이 그리스인들이다. 좀 전에 제시한 증명법은 중학교 기하학 시간에 배웠기 때문에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이지, 맨 처음 그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자에게는 얼마나 난감한 문제였을까를 생각해 보라. 그리스인들이 발명한 것은 결국 그런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는 기하학이었다. 대수학은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발달한 것에 비해 기하학은 오직 그리스에서만 생겨났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Academeia·그리스 아테네 교외에 있는 올리브 숲으로 플라톤 철학의 본산이다)를 드나드는 문 위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씌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은 바로 기하학의 정신을 극한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은 그리스인들의 발명품이다.

사람은 ‘대충’ 살 수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정확성’을 앞세우는 서양인들과 만났을 때의 결과는 앞에서 말한 ‘체계적인 패배’였다. 정확성은 사태의 본성을 엄밀하게 탐구하는 치열한 정신의 소산이며, 무엇 하나 ‘대충’ 넘기는 법이 없이 깨어 있는 정신적 노력의 결과이다.

사태의 본성에 충실하려는 ‘정확성’은 곧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곧바로 사용 가능한 실용적인 기술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양의 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래서 단지 그것만 떼어서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정신의 결과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도 그런 정신을 배우면 된다. 서양인들도 그것을 그리스인들에게 배운 것이지 자기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설가 최인훈의 표현대로 ‘감정의 소모 없이’ 그런 정신을 철두철미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는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은 열심히 배우면서 각자가 각자의 몫을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정확해져 가고 있다. 부정부패도 많이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건전한 국가가 될 것이다. 비로소 그때 더는 ‘성수대교 참사’와 같은 사건은 없을 것이다.

최화 경희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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