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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왕' 김일은 누구?

입력 | 2006-10-26 14:11:00


먹고 살기 힘들었던 60~70년대 호쾌한 박치기로 거구들을 쓰러뜨리며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프로레슬러 김일.

은퇴 후 혹독한 훈련과 치열한 경기의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후배들을 격려하며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던 김일이 오랜 투병 끝에 26일 오전 12시17분 눈을 감았다.

요즘처럼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등 변변하게 즐길 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프로레슬링은 전 국민을 흑백TV 앞에 끌어 모았던 최고의 인기종목이었고 그 중심에는 김일이 서 있었다.

1929년 전남 고흥의 한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일은 당시로서는 장신인 180㎝의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마을 씨름대회를 휘어잡았다.

동네 장사로만 남을 수 없었던 김일은 한 잡지에서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에 등극하며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역도산의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떠날 결심을하게 된다.

하지만 밀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한 그는 곧 경찰에 잡히게 되고 1년간의 형무소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도 김일은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고 이에 역도산은 보증을 서 김일을 형무소에서 빼내게 되고 1957년 그를 문하생으로 받아 들이게 된다.

이후 김일은 지옥훈련을 견디며 박치기 기술을 연마했고 1963년 스승인 역도산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링에 올랐다.

6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아시아태그에서 챔피언에 오른 김일은 이듬해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등극, 최고의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경기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렸던 김일은 87년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 보냈고 경기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자신도 줄곧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군대에 보낸 막내아들마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종종 후배들의 프로레슬링이나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왕년에 링에서 호령했던 박치기왕 김일의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70년대 중반 이후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을 맛봐야 했고 지병은 점점 악화했다.

그러던 중 김일의 안타까운 투병 소식을 접한 삼중 스님과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권유로 94년 1월 일본에서 국내로 건너온 뒤 을지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으며 생활을 하게 됐다.

국내에 머무르면서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 사업에 힘을 쏟아 붇기도 한 그는 95년 4월 일본 도쿄돔에서 일본 무대 공식 은퇴식을 갖기도 했다. 국내 은퇴식은 2000년 3월 장충체육관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프로레슬링 경기나 관련 행사가 있을 때면 그는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냈고 30년 이상 된 애제자 이왕표와 수시로 접촉하며 레슬링 발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일은 특히 남은 여생을 프로레슬링과 관련한 기억을 되돌아 보며 지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언제 다시 찾을 지 모르는 스승 역도산의 묘지를 방문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고 '레슬링 쇼' 파문으로 41년 간 서로 등을 돌리고 지내왔던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을 방문해 뒤늦게 화해하기도 했다.

김일과 함께 60대를 풍미했던 장영철은 두 달여 전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 프로레슬링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해 11월 그는 대장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으며 한 때 생명이 위태롭기도 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왕표씨의 간병 등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회복돼 사회생활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달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특별 시구자로 나선 김일은 휠체어를 탄 채 힘차게 공을 뿌렸지만 이것이 팬들을 위한 그의 마지막무대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