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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뜀박질이 앞장서고 우렁찬 구령이 뒤따르고/호룩호룩 추임새에 펑펑 터지던 환호성들/호루라기 이제 싱그러운 가슴팍이 아니라/늙고 병든 저 할머니 머리맡에 걸려 있네’(‘호루라기’에서)
‘호루라기’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최영철(50) 시인은 환하고 싱그러운 곳이 아니라 모자라고 한(恨) 많은 데에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가진 것 적은 이웃들,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온 최영철 시인. 그가 새 시집 ‘호루라기’(문학과지성사)를 냈다. 낮은 곳을 굽어보는 시인의 시선은 여전하되 대상의 못나고 허름함을 전달하는 시어는 더욱 생생해졌다. 이 세상은 너무나 더럽고 병들어서 순하고 착하게만 사는 것도 수월치 않음을 60여 편의 시는 보여 준다.
‘그에게는 아직 전향 못한 것이 있다…하루아침에 전향해 카드깡 문자메시지 원조교제 빠찡꼬 비밀댄스홀로 가는 게 아니라 떠나올 때처럼 한 걸음 두 걸음 걸어서 가는 것, 물물교환 부부 스와핑으로 꿈속에서만 탄식 속에서만 가는 게 아니라 바알간 대낮에 활개 펴고 나는 것’(‘비전향 사십 년’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맞바꾼 정신의 피폐함. 최영철 시인은 현실을 소리 높여 지탄하는 대신 쓸쓸한 심정을 잔잔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코딱지만 한 단칸방 가득 피어나던/따습던 저녁이 없다…희미한 외등따라 내 그림자 길게 늘어져/고단한 생의 흔적이 말끔하게 지워진 길’(‘철거지를 지나며’에서) 시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런 시편들에서 자신의 소망을 어느 정도 성취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