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달리 방송상의 2초는 긴 시간이며 2분은 치명적이다. 방송 중단 20분은 거론 자체가 불가능한 개념의 시간이다.”
국가 기간방송인 KBS가 14일 기기 결함으로 20여 분간 TV 방송을 중단한 사고에 대해 한 방송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만큼 KBS의 근무 자세와 대처 능력 모두가 잘못됐다는 얘기도 했다.
15일 취재를 위해 KBS를 찾아갔을 때 가는 곳마다 뒤숭숭했고 직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회사 측 대책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사장직무대행과 면담을 요청하자 KBS의 한 관계자는 “‘임시직’으로 있는 분이라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고 원인이 100여 일간의 사장직무대행체제가 초래한 ‘KBS 시스템의 이상’이라는 방송계의 지적이 떠올랐다.
KBS에는 오랫동안 총사령탑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정연주 전 사장은 임기 만료 후 88일간 직무대행으로 있다가 지난달 26일 연임 공모를 위해 사퇴했고 현재는 김홍 부사장이 사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대형 사고에 책임 있게 대처해야 할 지휘탑이 사실상 비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주된 이유는 정 전 사장의 연임을 고집하는 정권 측의 집착 때문이다. 정 전 사장은 재임 중 ‘코드 방송’이나 무리한 내부 개편으로 노조의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그가 연임을 위해 사장 공모에 응모하자, 노조는 “경영 능력이 없고 편파 방송으로 논란을 일으켰다”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후임 사장 인선 일정은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KBS노조는 16일 성명을 통해 “지난해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유사한 사고가 이어졌는데 정 전 사장이 미리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이를 방치해 오다가 엄청난 방송 사고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이번 사고로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방송위원회도 16일 사고 조사반을 구성해 경위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14일 밤 중단된 프로그램은 ‘위기탈출 넘버 원’이었지만, KBS의 ‘위기탈출’은 멀게만 보인다. 외부 입김에 휘둘리다가 대형 사고까지 빚은 KBS에 5240억 원(2005년 기준)의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들만 안타깝다.
남원상 문화부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