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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경주, ‘銀白의 허리문’ 길 열다

입력 | 2006-09-29 03:01:00

일정 마지막 날 경주 감은사지를 찾은 ‘추억의 신혼여행’ 참가자들. 첫날 서먹하던 분위기는 사흘 만에 이렇듯 다정한 모습으로 변했다. 왼쪽부터 윤호자 지종만, 정은선 이만득, 이병열 손풍운, 정수화 박영래 씨 부부.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이만득 정은선 씨 부부가 신라의 왕과 왕비 옷을 입고 왕관을 쓴채 경주 안압지의 임해전터 누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부는 42년 만에 신혼여행지인 경주를 ‘추억의 경주신혼여행’으로 다시 찾았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육십 청춘에 칠십 청년이라고 했던가. ‘이십 청춘, 사십 불혹’은 이제 흘러간 옛 노래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활동력이 강한 건강한 노년)가 출현한 덕분이다.

그 바람 타고 등장한 것이 ‘허리문(Ho-rey-moon)’.

‘은퇴(Retire) 세대가 다시(Re-) 손잡고 떠나는 제2의 신혼여행’을 허니문에 빗대어 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추억의 경주신혼여행’은 경주문화알림이인 사단법인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이 한국관광공사 경북도와 함께 마련한 허리문 패키지 제1호.

14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뤄진 경주 허리문(시범여행) 동행기를 싣는다.》

따분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주를 떠나던 날, 네 커플 스스로도 ‘의외’라고 평가했으니.

빠듯한 일정, 뻔한 유적, 낯모르는 이와의 동행. 주최도 여행사가 아니라 유적답사 경험이 전부인 문화단체. 그래서 기대는커녕 오히려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노년에 신혼여행이라는 것도 좀 계면쩍고.

그러나 사흘 후. 여행을 마치고 경주역으로 가는 버스 안은 헤어짐이 아쉽기만 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충남 당진에서 온 손풍운 이병열 씨 부부는 동행 커플에게 “우리 집 황토 방이 좋으니 꼭 한번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다른 이들도 서로 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흘간의 여행. 그 반응은 놀라웠다. 첫날 경주역 도착 당시의 어색함. 그런 어정쩡한 분위기는 하루 저녁을 보내고 나니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변화의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부부간에는 새 정이 돋은 듯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모습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저 멀리 시간의 벽에 갇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빛바랜 신혼의 추억. 경주 허리문은 그것을 당시 모습대로 되살려 내기에 더없이 좋은 자극제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 기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노년의 삶,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삶의 청량제가 아닐까 하고. 이제는 자식이나 남이 아니라 나와 내 짝을 삶의 중심에 두고 꾸려가는 그런 삶을 위해.

‘사흘간의 외출’이 뜻밖의 반응을 얻은 데는 비결이 있었다.

첫째는 열린 마음으로 동행한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자세. 이만득(70) 정은선(66) 씨는 42년 전 경주 허니문처럼 매일 옷을 바꿔 입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신혼여행을 걸러 ‘33년 만의 허니문’을 마련한 서울의 지종만(63) 윤호자(60) 씨 부부는 답사여행객 이상으로 진지하게 유적을 답사했다. 금혼(결혼 50주년)을 맞아 참가한 박영래(74) 정수화(71) 씨 부부는 자신들을 이 여행에 참가시키고 경비까지 낸 큰며느리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둘째는 진병길 원장과 신라문화원 자원봉사자의 노고다. 진 원장은 직접 일정을 진행하며 프로그램을 점검했고, 가이드를 맡은 자원봉사자 김혜경(신라문화원 문화유산해설사) 씨는 사흘 내내 안내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이끌었다. 경주시니어클럽 여성 회원(60세 이상)들은 차 대접, 왕과 왕비 옷 야외촬영 보조 등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맡았다. 이들은 클럽이 운영하는 제과점의 ‘서라벌 찰보리 빵’까지 선물했다.

셋째는 관련 단체의 지원. 한국관광공사와 경북도는 시범여행의 경비 일부와 홍보를 지원했고 더 나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직원까지 파견했다. 경북도관광협회 경주시지부와 경주 힐튼호텔은 식사를 대접했다.

‘추억의 경주신혼여행’은 경주관광 활성화를 위해 신라문화원이 기획하고 경북도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 1970년대 중반까지 허니문 1번지였던 경주를 시니어의 ‘허리문 목적지’로 다시 부각하려는 시도다.

진 원장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경주관광을 부흥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참가비 이상으로 지출하기 때문에 여행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운영한다”고 말했다.

경주=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빛바랜 사진… 불국사의 종소리… 추억속으로

오전 11시 동대구역 개표구 앞. ‘추억의 경주신혼여행’에 참가할 네 커플이 모였다. 주최 측이 환영 인사로 건넨 장미 한 송이. 기차여행의 피로가 사라진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비디오 촬영이 시작되는 것은 이때부터. 두 전속 카메라맨의 촬영은 3일 내내 계속된다. 촬영된 것은 커플별로 사진 및 비디오앨범에 담겨 선사된다. 간호사도 사흘 내내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참가자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배려다.

첫 행선지는 콩과 야채로만 음식을 내는 토속식당 ‘다유’(경주 한화콘도 근처). 정성이 담긴 특별한 음식에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오후 일정은 숙소(경주 힐튼호텔)에 짐을 푼 뒤 경주박물관과 천마총, 불국사 답사. 저녁 예불에 앞서 불국사에서 펼치는 사물의 울림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저녁식사는 경주 힐튼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의 디너에는 와인도 따른다.

식후의 연회장. 참가자 서로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마련된다. 미리 받아 둔 빛바랜 신혼여행 사진을 빔 프로젝터로 화면에 비추며 한 커플씩 소개하는 순서. 40∼50년 전 사진을 보며 웃고 떠드는 가운데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진다.

이튿날 아침. 경주한방병원으로 간다.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건강 유지를 위한 조언을 듣는 한방체험이 기다린다. 체질별로 건강법도 배운다. 점심식사는 산성숯불갈비. 오후 일정인 ‘신라왕과 왕비 체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장소는 안압지. 새로 맞춘 신라 왕과 왕비 옷으로 갈아입고 왕관까지 쓴 뒤 누각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녁식사는 경주 최부자 집의 고옥을 개조한 식당 ‘요석궁’에서 한정식으로 든다. 식후에는 대청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가람 국악실내악단의 연주도 감상한다.

셋째 날은 석굴암과 감은사지, 문무대왕의 대왕암을 찾는 일정. 점심식사는 감포 해변의 생선회다. 아침식사 장소는 문화유산 기행 작가인 김재호 씨가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경남 진주 등지에서 옮겨와 다시 지은 전통한옥 숙소 수오재(守吾齋). 부인이 직접 담근 된장과 밭에서 딴 채소로 정성들여 올리는 맛깔스러운 시골밥상이다.

경주=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 정보

▽패키지 상품=매주 목∼토요일(2박 3일) 일정. 1회 최대 30커플, 1인당 50만 원(2007년에는 60만 원). 모든 비용(경주 관광+경주 힐튼호텔 혹은 현대호텔+전 일정 식사)과 선물(사진 및 비디오앨범) 포함. 문의 신라문화원 054-774-1950, www.silla.or.kr

▽식당 및 숙소=△다유(천북면 물천리) 054-773-8866 △산성숯불갈비(보문단지 입구 삼거리) 054-749-5008 △감포대게전복횟집(감포 자연산 회단지) 054-775-7810 △수오재(배반동 217·사진): 80∼120여 년 된 고옥 세 채를 옮겨와 논밭에 둘러싸인 농촌마을에 조성한 숙박지. 방 9개에 50명 동시 수용 가능. 식사는 투숙객 대상 판매. 054-748-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