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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공직사회 “청와대, 공무원 자존심을 이렇게 긁나”

입력 | 2006-08-14 03:00:00

말없는 정부청사청와대의 인사 청탁을 거부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직무감찰을 받고 경질된 데 대해 많은 공무원들이 좌절감과 함께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정부과천청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갑작스러운 경질을 보며 공무원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행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청와대에 앉아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의 고위급 인사를 ‘아이들 장난’으로 만들고 있다.”

경제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13일 유 전 차관이 청와대의 인사 청탁에 저항하다 청와대의 직무감찰을 받고 경질된 데 대해 자괴감과 좌절감을 토로했다.

많은 공무원은 유 전 차관에 대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면서도 ‘솔직히 유 전 차관처럼 청와대의 인사 청탁 전화를 받고 거부할 강심장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는 탄식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권 들어 청와대의 무리한 인사 청탁이 심해졌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정부과천청사의 국장급 공무원은 “가장 큰 문제는 국정에 생소한 인사들로 가득 채워진 정권 핵심부에서 ‘급이 안 되는’ 동류(同流)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경험이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낙하산 인사’로 밀어붙이면서 인사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공직사회의 우려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이 정부에선 높이 올라갈수록 유 전 차관처럼 황당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요즘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권이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천천히 승진해 ‘고위 공무원단’에 늦게 들어가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중앙청사의 한 공무원은 “인사 청탁을 할 때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데 청탁을 거절했다고 ‘배를 째겠다’며 협박하는 것은 시정잡배 수준 아니냐”고 비난했다.

문화부는 여전히 내연(內燃) 중이다. 공무원들이 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사석에서는 격앙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부의 한 공무원은 “유 전 차관의 경질 배경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정말 웃기는 얘기”라며 “유 전 차관은 부내에서 ‘본받고 싶은 선배’였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정부중앙청사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요즘 각 부처에선 청와대 파견을 기피한다. 승진을 할 수는 있지만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전직 공무원은 “공무원들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직무감찰을 해 협박하고, 자르는 것이 이 정권의 전형적인 공무원 길들이기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외교안보 부처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2004년 1월 외교통상부 북미국에서 청와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이 나온 데 대해 민정수석실이 북미국 직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진상 조사를 벌였던 것이나 이번에 청와대가 직무감찰로 유 전 차관을 협박한 것이나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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