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오셨습니다"(서만술·徐萬述 총련 의장)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병옥·河丙鈺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17일 오전 10시반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
승용차에서 내린 하 단장과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 의장이 두 손을 뜨겁게 맞잡았다.
재일동포 사회를 양분하면서 반세기 동안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총련과 민단의 대표가 38선을 허물 듯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민단 중앙회관에서 총련 중앙본부까지는 승용차로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이렇게 가까운 총련 중앙본부를 방문하는 데 50여년이 걸린 하 단장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총련 직원 100여 명이 힘찬 박수를 보냈다. 20대 여성 직원 5명은 하 단장을 비롯한 민단 간부 7명에게 환영 꽃다발을 건넸다.
하 단장과 서 의장은 몇 마디 덕담을 더 나눴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소리와 "위험해", "밀지 마" 등 보도진 150여 명이 외쳐대는 떠들썩한 고함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두 단체 간부 14명은 정원에서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친 뒤 9층 회담장에서 마주 않았다.
하 단장이 "이런 날이 오기만을 오래전부터 꿈꾸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먼저 말문을 열자 서 의장은 "우리도 같은 심정"이라고 화답했다.
하 단장은 또 "오전 5시부터 민단 지역본부 간부 등으로부터 수백 통이 넘는 격려전화를 받았다"고 소개하고 "이런 동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두 단체가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민단과 총련 간부들은 보도진을 물리친 채 회담에 들어갔으나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양 측은 공동성명에서 "두 단체 간에 오래 지속돼온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전환시킬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또 △재일동포사회의 단합을 위한 협력 △8·15 기념축제 공동 개최 △6·15 민족통일대축전 일본지역위원회 공동 참가 △교육 및 민족문화진흥사업에 대한 공동 노력 △교포 복지향상 및 권익옹호를 위한 협력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창구설치 등에 합의했다.
총련 고위간부는 "조국의 통일, 민족교육, 재일동포의 권익과 복지 등 크게 3부문에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하나씩 찾아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 단체의 협력이 어디까지 진전될지는 모르지만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단체의 화해에 대해 재일동포사회는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설 화산도의 작가인 김석범(金石範·81) 씨는 "남북한의 통일이나 한일, 북일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의 의사를 반영한 '정치성 이벤트'라는 싸늘한 시선도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격렬히 대립했던 민단과 총련이 화해하는 것은 좋은 일"(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이라는 평가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민단과 총련이 화해하면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또 공안당국 안팎에선 "납치문제 해결에 미묘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도쿄=천광암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