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특파원에게.
서 특파원이 도쿄(東京)에 부임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됐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일본의 동해 무단 측량 기도 사태가 터지고 주일미군 재배치에 관한 미일 양국의 로드맵이 확정돼 무척 바빴을 겁니다.
특히 주일미군 재배치에 관한 로드맵은 일본 언론의 표현대로 멀리 중국 위협론까지 내다본 ‘미일 군사동맹의 일체화 작업’이라 10년, 20년 뒤의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칠 영향까지 가늠하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서울에서 그 로드맵을 따라 가상여행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역시 식견이 모자란 탓입니다. 가상여행은 자꾸만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하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착각이고, 또 하나는 천황제에 대한 재인식이었습니다. 동맹을 일체화한다는 마당에 느닷없이 무슨 ‘착각’이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일본의 군국주의화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민주주의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을 내세워 그럴 리 없다고 감싸 온 걸 생각하면 내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부시 대통령만 한 말도 아니고 논란이 많은 이론이지만 나는 그 말 속에 ‘곁에서 겪어 보지 않은 자(者)들의 무지’가 스며 있음을 느낍니다.
더구나 나는 평소 일본의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편이었습니다. 서 특파원이 더 잘 알 겁니다. 천황은 오직 하나의 뿌리로 내려온 통치자라는 만세일계(萬世一系) 이야기 말입니다. ‘국화와 칼’을 쓴 미국의 루스 베네딕트는 그 얘기를 ‘인(仁)의 배제’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중국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유독 ‘인’을 배제했다는 겁니다.
‘인’은 치자(治者)가 부덕(不德)하면 역성혁명(易姓革命)도 허용된다는 왕도사상(王道思想)의 핵심입니다. 독립운동가로 동아일보 초대 주필이셨던 설산 장덕수(雪山 張德秀) 선생은 창간 이념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뒤 그 주지(主旨)를 설명하면서 “옛 왕도사상과도 통하는 바다”라고 썼습니다. ‘인’이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역설한 겁니다.
서 특파원, 일본이 ‘인’을 배제한 것은 만세일계의 천황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황제의 외피가 어떠하든 그것이 ‘인’의 배제 위에 서 있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지밀(至密)로 환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민주주의 평화론’ 운운하며 애정을 표시하는 건 착각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서 특파원, 민주주의 평화론의 이론적 뿌리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Kant)의 ‘영구 평화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어떤 국제정치학자가 민주주의 평화론을 비판하면서 이런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Kant or Cant” 일본에 관한 한 나는 Cant(불능)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파원 임기 3년이 지난 뒤 서 특파원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