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에넥스 가구 생산 공장. 최근 50여억 원을 투자해 접착제 없이 친환경 가구 자재를 생산하는 설비를 갖췄다. 사진 제공 에넥스
‘고객은 냉철한 신(神)이다.’
21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부엌가구 업체 에넥스의 생산 공장. 기계의 굉음과 나무판 자르는 소리로 가득 찬 이 공장에는 고객이 신이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다. ‘왕(王)’이던 소비자가 ‘신’으로 승격한 셈이다.
에넥스 황간 공장은 까다로운 신 같은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최근 변신을 시도했다. 50여억 원을 들여 친환경 소재를 생산하는 설비를 개발한 것.
새집증후군의 피해가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친환경 소재를 찾자 전반적인 가구업계 침체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로하스(LOHAS·건강과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 생활)’ 소비자도 늘어 제품 폐기 후 오염물질이 나오는지도 고려했다.
“가구를 만들 때는 통상 심재(가구의 뼈대가 되는 나무판)에 무늬가 그려진 특수 종이나 비닐(PVC) 등을 접착제로 붙여요. 이때 접착제에서 포름알데히드,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이 나오는 겁니다.”
이상도 공장장이 새로 개발한 ‘워터본’ 공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접착제를 쓰지 않고 수용성 페인트로 무늬를 찍어 유해물질을 줄였다”면서 “종이나 비닐을 붙이지 않아 폐기 후 유해가스 발생도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심재가 기계 설비를 따라 움직이다 갈색 나무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롤러를 지나자 원목의 결이 살아 있는 듯한 나무판이 됐다. 여기에 UV 자외선을 쬐어 ‘선탠’을 시키면 가구 자재가 완성된다.
접착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 소재로 만든 부엌 가구. 위쪽부터 에넥스 블랙실버 라인, 오페라 라인. 사진 제공 에넥스 에넥스는 다음 달 1일 새로운 친환경 기술을 적용한 부엌가구, 붙박이장 등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친환경 소재에 투자하는 곳은 에넥스뿐만이 아니다.
앞서 한샘도 1월 친환경 자재를 사용했다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새 부엌가구 브랜드 ‘키친바흐’를 내놓았다. 한샘은 특히 포름알데히드 발생량을 10분의 1로 줄인 무독성 접착제를 사용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에넥스의 매출은 전년보다 8% 줄어든 2135억 원가량. 영업이익도 27여억 원 적자가 났다. 가구업계 1위 한샘도 영업이익 적자는 면했지만 매출은 전년보다 16%가량 줄었다. 그럼에도 주요 가구업체들이 새 기술을 개발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까닭은 위기일수록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다. 에넥스 박진호 사장은 “2년 동안 유럽에서 자재와 설비를 찾아 새 공정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친환경 소재를 원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동(충북)=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