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은행 ‘방코델타아시아’는 미국 정부가 지난해 9월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목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북한이 위조한 미 달러화를 돈세탁해 준 데 대한 미국의 경고였다. 이 은행이 이번에는 북한 간첩사건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검찰은 그제 화교 정모(67) 씨를 간첩혐의로 구속하면서 “정 씨가 받은 공작금은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공작원 계좌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마카오에 있는 북한의 검은돈이 대남(對南)공작에도 쓰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간첩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정 씨가 세 번째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는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필리핀인 위장 남파간첩 무함마드 깐수 등 주요 간첩 사건이 소개돼 있다. 대부분 김대중 정부 이전의 사건으로, 2000년 이후에는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간첩사건이 별로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검거된 간첩은 2000년 1명, 2001년 1명, 2002년 0명, 2003년 3명, 2004년 1명, 2005년 1명 등이다. 간첩을 안 잡느냐, 못 잡느냐는 논란이 일 만도 하다.
▷간첩 검거실적이 줄어든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활발해지면서 대공(對共) 수사기능이 위축된 데다, 북의 입장에서는 굳이 간첩을 남파하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안통인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그제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지금도 간첩이 많다”며 “탈북자를 통한 간첩행위가 여러 건 적발됐음에도 북한을 의식해 발표를 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뒤 분단 시절 서독에서 수많은 동독 간첩이 암약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일이 있다.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시의 문서 등에 따르면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으로 추산되는 첩자가 서독의 정계, 노동계, 학계 등에서 정보를 빼냈다는 것이다. 독일 검찰은 1990년대에 이 가운데 약 3000명을 수사해 500명을 기소했다. 남의 나라 일로 가볍게 넘겨도 될 일일까.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