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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등단 10년 만에 첫 단편집 ‘진해벚꽃’ 펴낸 김탁환씨

입력 | 2006-04-06 03:00:00

소설집 ‘진해벚꽃’을 펴낸 김탁환 씨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김탁환(38) 씨는 지난달 한남대 문예창작과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김 씨는 ‘불멸의 이순신’ ‘허균, 최후의 19일’ ‘나, 황진이’ 등 ‘옛날얘기’를 소설로 옮겨온 작가다. 그런 그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이다. 문화기술대학원이 앞으로의 문화산업을 내다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옛 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을 이야기로 풀어온 김 씨가 새로 펴낸 책 ‘진해벚꽃’(민음in)은 ‘작가 자신의 과거’에 관한 것이다. 등단 10년 만에 출간한 이 첫 단편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작가가 살아온 시간이 배경이다. 병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지내다가 이야기책에 빠져버렸던 열세 살 적부터, 김세진 이재호 두 젊은이가 분신한 이듬해 대학에 들어가 문학이 아니라 혁명을 배웠던 1980년대를 지나, 사료를 쌓아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내 ‘팔아먹고 사는’ 이야기꾼이 되기까지 작가의 삶이 담겼다. 한 편 한 편이 자전적인 이야기여서 소설집 전체가 한 권의 자전소설로도 읽힌다.

4일 만난 김 씨는 “많이 팔릴 책을 썼다기보다… ‘나는 왜 소설가가 됐는가’에 대한 답을 쓴 거죠”라면서 웃었다. 매설가(賣說家)를 자처해온 김 씨의 그간의 소설 작업에서 비켜났다는 얘기다.

“진해에서 났고 창원과 마산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마-진-창 벨트 있잖아요. 어렸을 때 폐결핵을 앓았거든요. 달리기를 좋아했는데 의사가 뛰지 말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이야기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단편 ‘진눈깨비’에도 나오는 이야기꾼의 기원 얘기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오고…. 그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전에 평론으로 등단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창작이었어요. 서울을 떠나니까 이야기가 써지더라고요.” 소설 쓰는 친구들에게 습작을 보여주면 “공부나 하지” 소리를 들으면서도 창작에 몰두했던 얘기는 단편 ‘아내와 나’에 나온다.

한편으로 이 소설집은 21세기에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외계 소녀 혈루 회복기’에서 작가는 “우리 문학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감동의 도가니’에서 “종이와 함께 땀도 눈물도 사라졌다”고 적는다. 이런 시대에 김 씨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뭘까. 그는 “이야기의 힘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소설이 힘을 잃는 것 같지만 모든 문화 장르에서 이야기가 쓰이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도, ‘밀리언달러 베이비’도 원작소설이 있다. 만화와 게임도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 들어가면 온갖 이야기가 떠돈다. 문학이 사라져간다는 시대에 김 씨는 오히려 희망과 가능성을 본다고 했다. 작가 자신 다양한 장르로의 ‘멀티 유스’가 가능한 ‘원 소스’로서의 튼실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늘 고심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하는 현대의 작가란 책으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장르로까지 ‘팔아먹는’ 매설가인 셈이다. 실제로 김 씨가 만든 이야기 대부분이 TV드라마로, 영화와 오페라로 변주됐다.

“이야기 짓기가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요. 본능의 힘을 믿으면서 나아갈 겁니다.” 단편집은 ‘멀티 유스’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곧바로 “이를테면 ‘진눈깨비’ 같은 작품의 경우 살을 붙여서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짧지만 결국 인생을 얘기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21세기 매설가다운 답변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