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가 세수의 90%를 부담하니까 세금이 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누진세를 ‘약탈로 가는 사다리’라고 불렀던 19세기 말의 영국 재무장관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내내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이던 영국은 소득세 단일 세율을 원칙으로 했다. 예를 들어 1886년의 소득세율은 모든 사람에게 3.3%였다. 영국인들은 단일 세율을 모든 국민에게 헌법적 평등권을 보장해 주는 장치로 생각했다.
물론 그때도 부자에게만 세금을 몰아서 매기자는 제안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지적 분위기는 누진세에 대해서 단호했다. 재무장관이던 윌리엄 하코트는 누진세가 조세의 평등성을 파괴해서 결국 ‘약탈로 가는 사다리(Scaffolding for plunder)’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날로 강해지는 사회주의적 흐름에 그처럼 완강해 보였던 단일 세율의 원칙은 무너진다. 1910년부터 연 5000파운드 이상의 소득자에 대해서 일종의 부유세를 매기기 시작했고, 누진소득세도 도입되었다. 그 후의 사태는 누진세가 약탈로 가는 사다리일 수 있음을 증명해 준다. 1910년 8.3%로 출발했던 소득세 최고 세율이 1979년에는 98%(부동산금융소득세율·근로소득세율은 83%)까지 높아진다. 그런 세금을 약탈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도 20세기 초까지는 단일 세율이 당연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1914년 연방의회가 최고 세율 6%(최저 세율 1%)의 누진세를 도입하자 납세자들의 반발이 잇따랐고 급기야 대법원에 위헌심판이 제기된다. 6%라는 최고 세율의 높이보다는 누진제도 그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재판이기에 사람들은 큰 의미를 두었다. 누진이 허용될 경우 처음의 6%가 나중에 90%로 높아진다고 해도 제어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은 너무 싱거웠다. 법원은 위헌심판을 제기할 이유가 없다고 기각해 버렸고, 누진세는 조건 없이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 후 미국의 소득세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는 최고 세율이 91%에 이른다.
물론 간접세의 역진성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세인 소득세는 어느 정도 누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소득세가 ‘약탈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수준도 아니다. 하지만 누진세는 언제든지 약탈적 세금으로 변해 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두 나라의 역사는 잘 보여 준다.
세금이 약탈로 되어 가는 배경에는 세금을 내는 사람과 걷힌 돈을 쓰는 사람이 달랐다는 사정이 놓여 있다. 왕이 백성을 착취할 때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가 소수의 돈을 거두어 갈 때나 구조는 비슷하다. 세금을 내는 사람 자신이 세 부담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약탈성 세금을 막을 수 있다.
13세기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세계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 포함되기에 이른 조세 법률주의는 세금을 내는 사람이 세율을 결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약탈할 리는 없을 터이니, 제대로 된 조세 법률주의하에서는 세금이 약탈로 변할 이유도 사라진다.
그런데 위의 영국과 미국은 모두 조세 법률주의에 철저한 나라였다. 조세 법률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약탈적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누진제도가 조세 법률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누진세를 잘못 운영하면 국민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누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면세점을 높여 놓을 경우 이분법적 대결 구도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는 모든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세금을 내지 않는 유권자들만의 대표가 된다. 세금 역시 다수의 유권자가 소수의 가진 자의 돈을 뺏어 오는 장치가 되어 버릴 위험이 크다.
이 경우 세법을 국회가 정한다는 의미에서는 조세 법률주의이지만, 세금을 내는 사람이 세 부담의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본래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이 많건 적건 모든 유권자가 자기 소득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정착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세금이 약탈로 변하는 것을 막아 낼 수 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