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의 앞길은…비자금 조성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하면서 현대·기아자동차가 술렁이고 있다. 28일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연구개발(R&D)센터 건립 인허가 과정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이 건물의 증축을 위해 김재록(金在錄)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이 건설교통부, 서울시 등에 로비를 했는지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건교부 관계자들이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사옥 맞춤형’ 규칙 개정?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터는 당초 유통업무설비만 지을 수 있는 일반 상업지구여서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그룹은 입주할 수 없었다.
건교부는 2000년 8월 18일 ‘도시계획 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도시계획시설 규칙)’ 중 유통업무설비에 대한 규정에 ‘자동차 매매업 또는 도매업에 제공되는 사무소 또는 점포’라는 항목을 넣었다.
이 규정이 바뀐 직후인 같은 해 12월 현대차그룹은 이 사옥을 사들였다.
2002년 8월 31일 개정된 도시계획시설 규칙에는 2년 전 삽입된 항목이 다시 빠졌다. 건교부가 현대차그룹 사옥 매입을 돕기 위해 규칙을 바꿨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건교부 측은 “당시 근거 자료 등이 부족해 왜 이렇게 규칙 변경이 이뤄졌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뿐이 아니다. 현대차그룹 사옥 터는 여전히 유통업무설비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부대시설로 연구시설을 지을 수 없었다.
2004년 12월 3일 건교부는 도시계획시설 규칙 중 유통업무설비의 부대시설 항목에 ‘유통업무와 관련된 연구시설’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터에 연구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규칙이 개정된 뒤 그 혜택을 본 대기업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서울시가 이 규칙에 근거해 이듬해인 2005년 1월 15일 도시계획시설 변경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 대형 건물을 건립할 때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차그룹 사옥 건에 대해서는 심의하지도 않고 허가가 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 기존 시설을 개축하는 경우 ‘경미한 사항’으로 봐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면서 “현대차그룹 사옥은 용도변경이 아니라서 경미한 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건교부·서울시 책임 떠넘기기
이러한 규칙 개정 과정에 대해 건교부와 서울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는 건교부가 2004년 4월 14일 규칙을 바꾸겠다며 의견을 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같은 해 5월 7일 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유통업무설비 부대시설에 연구시설을 추가하는 의견을 건교부에 냈다는 것이다.
서울시 김병일(金丙一) 대변인은 28일 “서울시는 건교부가 규칙을 바꾸겠다는 방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건교부는 “규칙을 정기 점검하는 차원에서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견을 문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통업무설비 관련 사안은 거론하지 않았다”며 당시 지자체에 보냈던 공문을 공개했다.
건교부 이재홍(李載弘) 도시환경기획관은 “서울시가 ‘묻지도 않은’ 유통업무설비 내 연구시설 허용 건을 규칙 개정 때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며 “로비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