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이 17일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서 정부의 강제 토지 수용에 반발하며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논갈이 투쟁’을 하고 있다. 경찰은 마을 외부에서 들어오는 트랙터만 막아 주민들과의 마찰은 없었다. 평택=김미옥 기자
용산기지와 미2사단 등 주한미군 기지 이전 예정지인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대의 긴장감이 더해 가고 있다. 2008년 말까지 기지 이전 작업을 마치려는 국방부에 대해 “땅을 내줄 수 없다”는 주민 및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본격화되면서 양측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돌파구가 안 보인다=17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는 K-6(캠프 험프리스)기지 주변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트랙터 25대를 이용해 논갈이를 했다. 16일 20여만 평에 이어 이날 30만 평의 논을 갈아엎었다.
범대위 측은 “트랙터 200여 대를 동원해 이틀간 논갈이를 할 예정이었지만 트랙터 반입이 안 돼 차질이 빚어졌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지 이전 예정지 285만 평 전체를 갈아엎고 농사를 짓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주민들의 논갈이 투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15일 일부 농로를 폐쇄해 주민들과 충돌했지만 이날은 주민들의 부상 등 불상사를 우려해 논갈이는 막지 않았다.
경찰 41개 중대 4000여 명도 기지 안팎과 마을 입구 등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트랙터의 반입은 저지했지만 논갈이를 막지는 않았다.
국방부와 범대위의 대립은 토지 보상에 들어간 지난해 7월부터 본격화됐다. 기지 예정지의 철조망을 자르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60명이 부상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번까지 네 차례 대규모 행사 중 두 차례에 걸쳐 충돌이 있었고 15일에도 4명이 다치고 40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왜 논갈이 투쟁인가=현재 기지 이전 예정지 285만 평에 대한 토지소유권은 올해 1월 말로 국방부로 넘어온 상태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이 협의 매수를 거부해 국방부는 70만 평에 대한 보상금은 공탁을 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은 평당 15만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고 이는 현 시세와 상당히 근접해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보상금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농지 매수를 생존권 박탈로 간주하고 있다.
주민 조윤호(69) 씨는 “내 땅은 없지만 임대 농사를 지어 평생을 먹고살았는데 30평짜리 집 보상금 2000만 원을 갖고 이제 어디로 갈 수 있겠느냐”며 “살만큼 살았으니 차라리 이 땅에서 죽겠다”고 말했다.
대추리 전체 140가구 중 현재 보상금을 받고 이주한 경우는 20여 가구에 불과하다. 도두2리 역시 61가구 중 5가구만 떠나고 나머지 주민들은 모두 땅을 지키겠다고 남아 있다.
국방부 측은 논갈이에 대해 “영농 행위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며 앞으로 울타리 설치 등을 통해 영농을 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논갈이 투쟁에 나선 만큼 반드시 수확까지 할 계획”이라며 “국방부는 사태를 쉽게 보지 마라”고 말했다.
범대위 이호성(36) 상황실장은 “농민들은 자신이 기르는 농작물이 훼손당할 경우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농민 정서상 그때는 K-6기지의 안전도 보장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대위는 다음 달 23일 주민 촛불집회 600일을 맞아 대규모 문화행사를 여는 것을 비롯해 지속적인 투쟁을 계획 중이다.
또 마을 곳곳에는 반미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범대위 측에 반미단체가 참가하고 있어 향후 대추리가 반미투쟁의 핵심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올해 안에 마치기로 한 미군기지 이전 기반공사 작업을 비롯해 기지 이전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경찰은 “땅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이번 기지 이전을 반미투쟁의 계기로 삼으려는 세력이 뒤섞여 있어 언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우려된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사태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15일 농로 폐쇄 작업을 막은 박모(44) 씨 등 인권단체 회원 2명과 대학생 2명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가수 정태춘 씨 등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평택=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