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별 강연을 했다. 여기서 그는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 역차별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산업 분리 원칙의 완화나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의견이 큰 틀에서 옳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왜 임기 중에는 다른 얘기만 잔뜩 하다가 떠날 때가 돼서야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지 안타깝다.
박 총재는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기업 투자와 소득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법’과 사뭇 다른 견해다. 박 총재가 재벌정책이나 복지대책 등에서 ‘코드정책’의 문제점을 진작 소신껏 지적했더라면 청년 실업자와 빈민층의 고통도 조금은 덜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과거엔 ‘시장경제와 개방화의 전도사’로 꼽혔다. 2004년 5월 국무조정실장 시절엔 “기업인이 공무원 앞에서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하는 것은 공직자 눈 밖에 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며 기업인 편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재임 1년간 그가 국민에게 보여 준 모습은 코드 맞추기였다. 1월엔 “강력한 부동산대책으로 건설업이 다소 침체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부동산을 정상(正常)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며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치논리를 흉내 냈다.
그의 장담을 비웃듯 서울 강남 집값 상승률은 여전히 전국 최고이고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 이후의 서울시내 전세금은 그 직전 6개월에 비해 3.7배의 상승률을 보였다. 또 강남지역 아파트의 보유세는 최고 300%까지 오르게 된다. 이런 ‘세금폭탄’으로는 뛰는 부동산 값을 잡기 어렵고, 결국은 집값과 전세금을 다시 올린다는 점을 잘 알 만한 한 부총리가 정치논리로 만들어진 8·31대책을 그냥 수용한 이유는 뭘까.
말썽 많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임에 권오승(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장)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임명됐다. 강 위원장 시절의 공정위는 재벌에 대한 규제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에 대한 조사 등에 매달렸다. 새 위원장도 전임자처럼 경직적인 기업규제에 집착한다면 한은 박 총재가 말한 ‘기업투자와 소득(증가)의 선순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코드로 경제 비트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