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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주먹 바다 건넌 청년 마승진, 패션 巨商돼 돌아오다

입력 | 2006-03-15 03:05:00

호주 ‘그레이스패션’ 마승진 사장이 지난달 서울 중구 명동 아바타몰에 상설 매장을 열었다. 그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작은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김재명 기자


옛날부터 유대인들은 “온 세상이 장사 거리요, 흰 구름도 짜면 비가 된다”고 했다.

이들의 장사 수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계약은 생명처럼, 서명은 신중하게’ 하며 평생 신용을 지켜야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호주의 의류업체 ‘그레이스패션’ 마승진(51) 사장은 현지에서 ‘코리안 주이시(Korean Jewish·유대인 같은 한국인)’라고 불린다. 호주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하며 유대인들에게서 얻은 별명이다.

그는 호주에 24개의 대형 의류매장을 갖고 있는 ‘거상(巨商)’이다. 매장을 다 합친 넓이는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버금간다. 지난달에는 서울 중구 명동 아바타몰 한 층을 전부 자신의 매장으로 꾸미며 화려하게 고국 시장에 진출했다.

○영어 배우러 갔다 생계 위해 옷장사

마 사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형과 함께 양식업을 했다가 태풍이 오면서 사업을 접었다.

무역업을 하고 싶었던 그는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1986년 호주로 갔다. 원래는 ‘패션’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딱 1년만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생각만큼 안 늘어서 더 있자고 마음먹었죠.”

생활비가 필요해진 그는 시드니의 시장 한복판에 조그만 전자제품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돈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편의점, 식당 등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쫓겨났다. 이렇게 해서 할 수 없이 시작한 것이 옷 장사였다. 물론 그때만 해도 사업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매장 24개서 年매출 250억 원대 성장

그의 가게에는 곧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같은 품질의 옷을 남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팔았기 때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옷을 싸게 만드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대량 구입, 대량 매도’의 철칙을 지켰다. 모든 결제는 현금으로 치렀다.

특히 신용을 목숨처럼 지키려 노력했다. 유대인에게서 큰돈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마 사장은 자기 매장에서 생기는 매출액으로 매일 그 돈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6개월째 되는 날 그 유대인이 “당신은 앞으로 외상 걱정 말고 계속 돈을 갖다 쓰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자신과 거래하던 중국인 도매상이 실수로 영수증에 1만 호주달러(약 720만 원)를 적게 기재한 것을 뒤늦게 알아내고 이를 알려준 적도 있었다.

“그 뒤로 그는 제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습니다. 당시 1만 호주달러는 엄청나게 큰돈이었거든요.”

○“이젠 한국에 투자” 명동에 쇼핑몰

마 사장은 디자인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면서 어떤 사람의 옷이 예쁘다 싶으면 얼른 수첩에 그리거나 사진을 찍었죠. 연속극을 봐도 스토리는 안 보고 여자 옷만 봤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예쁘다, 안 예쁘다’를 구별하는 능력은 있었다. 남의 물건만 갖다 팔다가 호주 진출 5년 뒤부터는 자신이 만든 옷을 팔기 시작했다.

1년에 2, 3개꼴로 새로운 가게를 열었다. 매출은 연간 250억 원대로 불어났다.

마 사장은 “요즘은 패션의 국제화 경향이 있어 호주에서 잘 팔리면 아시아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는 수년 내에 중국과 일본에도 점포를 차리고 싶어 한다.

“막상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뭘 하더라도 잃을 것도, 손해 볼 것도 없었으니까요.”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