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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美 LA 시네마 메이크업 학교

입력 | 2006-02-18 03:05:00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시네마 메이크업 학교(CMS)에서 괴물로 분장한 모델들 과 분장실습 학생들.


‘괴물이다!’

피범벅에, 살이 너덜거리는 좀비가 돌아다닌다. 기괴한 형상의 외계인이 옆을 스친다. 공상·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듯하다.

생생하다. 그러나 진짜 괴물은 아니다. 감쪽같은 분장술 때문에 오히려 만지고 싶어질 정도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네마 메이크업 학교(CMS·Cinema Makeup School).

로스앤젤레스의 유서 깊은 건축물인 윌셔 가의 윌턴극장 3층.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MGM, 디즈니 등 대형 영화 스튜디오와 멀지 않다. CMS의 최대 강점이다. 최첨단 분장기술 습득과 졸업 후 진출 무대가 가깝다.

이 때문에 CMS 졸업생의 80%는 할리우드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영화사에 소속돼 있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으려면 높은 수준의 학습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 교육은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쉴 새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교실 수업은 없다. 주로 랩(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시끌벅적하고 자유분방하게 진행된다. 강사는 강의보다 작품을 만드는 학생 사이를 오가며 시범을 보여 주고 틀린 곳을 고쳐 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학생들도 서서 바쁘게 작업하기 때문에 누가 강사이고, 누가 학생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괴기스러운 분장을 한 학생 케이시 워드(26) 씨는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이곳에 다니고 있다.

순수예술 전공만으로는 취직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CMS 재학생의 연령은 16세에서 40세까지 다양하지만 20대 후반이 가장 많다.

특수분장 수업에 20여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전체 학생(평균 40명)의 절반 정도. 한쪽에서는 캐릭터 메이크업, 다른 한쪽에서는 프로스테틱(보철) 메이크업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① 분장에 앞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형상을 석고틀로 제작해야 한다. ② 보철(프로스테틱)을 이용한 분장은 인조 피부를 씌우기 전에 내부를 정교하게 고정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③ 분장을 마친 후 학생과 모델이 인조 피부를 당기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캐릭터 메이크업은 특별한 보철물 지원 없이 메이크업 키트만 사용한다. 물감, 붓, 실, 바늘 등 기본 분장도구에 젤라틴, 실리콘 재료를 써 노인으로 꾸미거나 상처투성이 괴물을 만든다.

반면 프로스테틱 메이크업은 석고, 점토 등과 각종 화학약품을 합성해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이나 신체 부위에 씌운다. 캐릭터 메이크업보다 노동 강도가 높고 작업 과정도 길다. 뒤집어쓰는 마스크인지라 정교함이 관건이다. 한 학생이 만든 마스크에 흠이 보이자 강사는 “석고 틀에 공기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제 손 모양을 떠 석고 틀을 만들고 있는 학생 켄 리조(31) 씨는 자칭 호러(공포)영화광. 당연히 호러영화 제작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여차하면 핼러윈 마스크나 인형 제작일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할리우드 부근에는 생각만큼 분장학교가 많지 않다. CMS와 조 블라스코 스쿨이 대표적인 사설 분장 교육기관. 남캘리포니아대(USC),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는 명성이 자자한 영화학과가 있으나 분장 과정을 별도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1993년에 세워진 CMS는 역사는 짧지만 재학생 수를 제한해 개인지도에 주력한다. 반면 1960년대에 설립된 조 블라스코 스쿨은 졸업생을 다수 배출해 업계에 영향력이 큰 반면 재학생이 많다 보니 강의와 비디오 시청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다.

CMS는 특수분장 외에도 전통적인 뷰티 메이크업 과목도 개설하고 있다. 7개의 기본 과정이 있으며 여러 과정을 섞은 3개의 종합 과정이 있다. 절반 정도의 학생은 최장기(18주) 코스인 마스터 과정을 수강한다. 마스터 과정의 수업료(재료비 별도)는 9700달러(940만 원가량)로 비싼 편이다. 현재 외국인 유학생은 7명이며 한국 출신은 2명.

이민 온 뒤 이 학교를 졸업한 유현수(35·여) 씨는 할리우드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성공적인 케이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특수분장가인 릭 베이커 씨가 운영하는 작업 스튜디오에 들어가 ‘반지의 제왕’ ‘혹성탈출’ ‘맨 인 블랙’ 분장을 담당한 그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붙이는 전문가다.

그는 “전임강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모교의 특징”이라며 “강사진 모두 15∼20년의 현장 경력을 갖고 있어서 특수분장의 최신 경향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입학담당자 리 조이너 씨 “케이블 TV 늘면서 특수분장 수요증가”▼

CMS 강사 모두가 그렇지만 입학 담당자인 리 조이너(사진) 씨도 현역 특수 분장가다. ‘스타워즈’ 시리즈, ‘쥐라기 공원’ ‘반 헬싱’이 대표작이다. CMS에서는 프로스테틱 수업을 맡고 있다.

조이너 씨는 “최근 미국 영화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특수분장 분야만큼은 예외”라고 강조했다.

2000년 이후 할리우드의 분장 관련 일자리는 매년 8%가량 증가하고 있다는 것. 거액을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호러 채널, 공상과학(Si-Fi) 채널 등 케이블방송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수요 증가의 요인이다.

직업학교인 만큼 졸업 후 진로 선택은 학생의 최대 관심사. CMS는 학교로 연락이 오거나 업계 전문지에 난 구인광고를 모아 학생들에게 매일 2회씩 e메일로 보내 주고, 영화 스튜디오와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있다.

그는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역시 인맥이 중요하다”면서 “특수분장 취업의 50%는 정식 인터뷰 없이 소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유학생의 경우 비자 문제로 졸업 후 할리우드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재학 중 인턴 활동을 열심히 하며 경력을 쌓아 둘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이곳을 거친 한국 유학생은 16명가량이라고 한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와 9·11테러 이후 한 차례씩 크게 감소했다가 최근 늘고 있다.

조이너 씨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다른 나라 출신 졸업생과 달리 한국 학생은 귀국해서 전문대, 학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비율이 50%에 이른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