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내양 정화숙 씨가 버스 옆면을 ‘탕탕’ 두드리면서 “오라이”를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태안군
“내리실 분 더 안 계시면 출발합니다. 오라이∼.”
25일 오전 10시 충남 태안군 태안읍 공영터미널. 버스 안내양의 “오라이(All right가 변형된 말)” 소리가 태안군에서 22년 만에 다시 울려 퍼졌다. 부활된 ‘안내양 버스’는 이날 시범 운행을 거쳐 다음 달 1일부터 공영터미널에서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 마도까지 15km(35개 승강장) 구간을 본격적으로 운행한다.
시내버스의 상징이었던 안내양은 버스비를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며 승객들을 버스 안으로 밀어 넣는 한국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였으나 1980년대 이후 모습을 감췄다.
이날 부활된 안내양은 보험설계사 출신 가정주부 정화숙(39) 씨. 태안군은 관광객 유치와 노약자 안전 등을 위해 ‘안내양 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 태안군은 신체 건강하고 성격이 쾌활하면서도 배려심 있는 안내양을 찾기 위해 10여 명을 수소문한 끝에 정 씨를 채용했다.
정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남편을 따라 태안으로 온 지 20년이 넘어 태안 지리에도 익숙하다. 채용 조건은 월 25∼26일, 하루 9시간(오전 9시∼오후 6시) 근무에 월급 140만 원 안팎. 그는 옛날 버스 차장과 같은 모자와 유니폼, 돈 가방을 착용하고 정차할 때는 “스톱∼”을, 출발할 때는 버스 옆면을 탕탕 치며 “오라이∼”를 외쳤다. 정 씨는 빈 버스를 타고 다니며 1주일가량 안내양 연습을 했다.
‘안내양 버스’ 안에는 ‘바보들의 행진’ ‘고교 얄개’ ‘진짜진짜 좋아해’ 등 ‘7080’ 분위기를 자아내는 옛 영화 3편의 포스터가 부착됐다. 또 버스 옆면에는 버스 안내양 그림과 함께 ‘오라이, 추억으로 가는 포구여행’이란 문구를 붙였다.
시범 승차 승객들은 갑자기 거꾸로 되돌려진 세월 앞에 멈춰선 느낌을 받았다. 박선자(54·여) 씨는 “20세 전후까지 안내양이 있는 버스를 타 본 것 같다”며 “예전의 차장은 고생이 심해 표정이 무척 어두웠는데 이 버스 안내양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정 씨는 돈 가방을 차고 있지만 이미 버스카드제가 실시되고 있고 요금 통이 운전석 옆에 별도로 마련돼 있어 차비를 받거나 승차권을 걷지는 않는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노약자의 승하차를 돕는다.
정 씨는 “조금 힘들긴 하지만 노약자의 버스 이용을 돕고 관광 홍보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태안군 이장주 교통행정계장은 “태안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있지만 추억 어린 과거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10월경 평가회를 해서 주민과 관광객의 호응이 좋으면 주요 노선 2, 3개에 안내양을 확대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