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신년 연설을 통해 제시한 양극화 대책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책 방향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각론에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민간기업 투자 여건 만들어야
노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일자리”라면서 “중소기업이 살아야 수출과 내수가 확대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중소기업의 구조조정과 효율적인 자금 지원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초 내놓은 자료를 통해 2000∼2002년 정책금융을 받는 중소기업과 받지 않는 기업의 영업이익률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칫 일자리 창출 효과는 생기지 않고 돈만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전주성(全周省·경제학) 교수는 “지원에 앞서 중소기업의 근본적 구조조정을 유도해 경쟁력을 높여야 정부 지원이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 같은 ‘잠정적인 어려움’을 정부는 견뎌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 산하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이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兪炳圭) 본부장은 “양극화 해소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방향은 맞다”며 “다만 임시적 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투자 활성화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숭실대 이윤재(李允宰·경제학) 교수는 “기업의 투자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이 투자를 꺼리게 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회적 일자리 확대’는 신중하게
노 대통령이 지난해의 2배 가까운 13만 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사회적 일자리의 예로 보육, 간병, 교통, 치안, 식품 안전, 재해 예방, 환경 관리 등 공공서비스 분야를 지목하면서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姜又蘭) 수석연구원은 “일자리 창출에는 여러 수단이 있지만 이를 동시에 모두 성공한 나라는 없다”며 “한국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 정책이 성공할 여건이 아직 안 돼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나성린(羅城麟·경제학) 교수는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지만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이는 결국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재원 확보가 관건
양극화 해소에 많은 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 고령화 및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올해부터 2010년까지 30조5000억 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정부는 일률적인 세율 인상 없이 추가 재원을 마련한다는 원칙 아래 △성장 확대를 통한 자연 세수 증가 △비과세 및 조세 감면 축소 △세출 명세 조정을 통한 재원 조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아무리 재정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 구조를 바꿔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듯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복지 관련 재원을 마련하기에는 모자라다는 평가가 많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정부의 각종 대책이 재정 건전성에 미칠 악영향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현실성 없는 장밋빛 계획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원 확보를 위해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