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저녁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 양극화 해소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신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신년연설의 대부분을 일자리 창출 등 양극화 해소 방안과 사회안전망 확충 등 복지분야 대책에 할애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어떤 내용 담았나=노 대통령은 경제 전체를 보면 잘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소득 계층 간 격차 등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 국민연금 개혁과 저출산·고령화 대비 등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인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양극화 문제의 해법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하면서 올해는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13만 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보육 간병 교통 치안 등 공공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막대한 돈이 든다. 사회안전망 확충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아예 내놓고 정부재정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게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선진국의 60%에 불과하다”며 “선진국은 예산의 반 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지만 우리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이 필수적이고, 결국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지도층을 향해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상생 협력의 결단을 촉구했다.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책임 있는 논의를 벌여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앞세워 야당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적극 동참하라고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야당도 ‘양극화 해소’를 반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정치적 노림수 없나=야당에서는 당장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혼자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다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가르치지 말고 국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정파적 이해관계로 보지 말아 달라”고 말하지만, 양극화 문제는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수의 서민층에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제라는 점에서 양극화 이슈 제기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여권이 양극화 이슈를 이탈한 지지층을 결집하는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여권에 대한 경제 사회적 정책 실패의 책임론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전 의장이 지난해 말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우파가 집권하면 부자 2%만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라며 “그건 역사의 후퇴며 재앙이다. 우리가 10년 더 집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이 공공 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세금 인상을 강하게 시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증세가 현실화되면 기업과 부자들이 반발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 전 의장의 말에서 보듯 이 경우 여권은 ‘기득권층’, ‘소수 부자’가 양극화 해소를 반대한다고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부자 때리기’는 정치적 전선(戰線)을 뚜렷이 재편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기대이기도 하다.
김형준(金亨俊)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두꺼워지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양극화의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강한 개혁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양극화 문제는 이들의 잠재적 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승부수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교육-의료 시장개방 필요… 골프 사치라고 생각 안해”■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신년연설에서 “교육·의료분야의 시장 개방이 필요하고 골프에 대한 국민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대학과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 없다”며 “일자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이 해외에 나가 돈을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며 시장 개방의 목적으로 일자리 창출 외에도 산업 경쟁력 강화를 들었다.
그는 또 “문화·관광·레저와 같은 서비스 산업도 다양하게 육성하고 고급화해야 한다”며 “골프와 같은 고급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치라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