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상사의 욕도 달콤하더라!…바늘구멍 뚫고 취업한 2人 이야기

입력 | 2006-01-10 03:04:00


《첫 직장은 설렌다.

어렵게 얻은 직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취업난을 뚫고 새 인생의 보금자리를 찾게 돼 행복한 두 젊은이가 있다. 지난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의 눈을 통해 일터의 중요성을 되짚어 봤다.》

■GS홈쇼핑 차광염씨

“… ….”

1초, 2초…. 그 짧았던 10초가 10시간보다 더 길었다.

“짝짝짝!”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0명의 고객이 ‘힘내라’는 의미에서 보내 준 격려의 박수.

그제야 말문이 열렸다. 2분간 정신없이 상품 설명을 끝내고 나니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GS홈쇼핑 신입사원 차광염(27) 씨. 회사가 지난해 3000여 명의 응시자 가운데 뽑은 11명의 쇼핑 호스트(상품 소개 전문 MC) 가운데 유일한 남자 직원, ‘청일점’이다.

그는 첫 직장을 잡기까지 고생도 많이 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게 2004년. 아나운서를 꿈꾸다가 방송국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다.

그냥 놀 수는 없어 경기방송 라디오 DJ, 동아TV MC와 성우, 입시학원 국어교사 등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뛰었다. “4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 적도 있다”고 회고한다.

아르바이트 삼아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사회자를 도와 주는 게스트 역할을 한 게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바로바로 매출로 연결되고 고객 반응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죠. 본인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좌우되기 때문에 아주 매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GS홈쇼핑 쇼핑 호스트 공채 1기 모집에서 최종 후보는 22명. 마지막 관문은 채점지를 든 200명의 VIP 고객 앞에서 상품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를 2분간 설명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이름을 말하고 나니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거예요. 두 달 동안 연습을 했는데도 말이죠.”

차 씨는 이 실수 때문에 탈락했지만 다른 남성 합격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뒤늦게 합격하는 행운을 안았다.

풋내기인 그는 입사한 뒤에도 실수가 많았다. 첫 방송에서는 여성용 속옷(란제리)에 대해 잘 몰라 쩔쩔맸고 독일제 스팀청소기를 들고 시연(試演)하다가 총처럼 생긴 손잡이에서 스팀은 안 나오고 물만 나와 야단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와 함께 컴퓨터를 2시간 동안 20억 원어치나 팔 때는 정말로 신이 나서 말이 줄줄 나왔다고 한다.

차 씨는 “적성에 맞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행복하다”며 “내 이름만 들어도 고객이 신뢰하고 매출이 보장되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샘표식품 오두진씨

지난해 12월 239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샘표식품에 입사한 오두진(28) 씨.

다음 달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는 오 씨는 지난해 출간돼 화제를 모은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라는 책의 저자. 이 책은 오 씨가 휴학하면서 1년 6개월 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쓴 국내 최초의 커피 역사서다.

“고종황제는 우리나라 첫 번째 커피 마니아였죠.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공급받았는데 거의 중독 수준이었어요. 스타벅스가 현재의 커피 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에 그런 책 제목을 지었어요.”

공군 행정병 시절 하루에 커피를 20잔씩 마신 그는 위경련을 일으켜 국군대전병원에 한 달간 입원한 적도 있다.

기호식품과 음식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오 씨는 궁중요리 전문가인 전주대 한복진 교수의 권유로 샘표식품에 지원했다.

입사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어진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 면접. 그는 군 제대 후 2년간 자취한 경험을 살려 ‘된장 비빔밥’을 맛있게 만들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 씨는 “음식이야말로 상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며 “국내 음식 문화를 이끄는 선구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 샘표식품 60주년을 맞아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국내 ‘장’ 문화를 짚어보는 책을 낼 계획이란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