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북한 동해 쪽의 평범한 어촌이다. 배가 들어오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런 고향에서 날아든 소식이 나를 울렸다. 최근 중국에 나온 고향의 지인과 통화하며 고향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가 줄줄이 이어지는 “바다에 나갔다가 죽었다”는 소리에 그만 가슴이 막혔다.
옆집 살던 3대 독자 정길이가 죽었단다. 기타를 치며 남한 노래를 ‘폼 나게’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길 건너 영국이 형제도 한날한시에 죽었단다. 과부로 영국이와 유복자인 영남이를 키우던 이웃 아주머니는 자식들의 시신조차 못 건졌다. 보조개가 예뻤던 성희는 애를 업고 배에서 일하다 다른 13명과 함께 빠져 죽었다. 그나마 우리 마을은 좀 낫다. 외지인이 많은 이웃 동네엔 두 집 건너 과부라고 한다.
내 고향에선 오징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오징어철인 6월에서 9월까지는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남자들은 모두 바다에 나간다. 지난해 여름 유별나게 많이 죽은 이유는 연해 오징어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고향에선 4∼5m 길이의 나무배에 서너 명이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카바이드 등불에 의지해 오징어를 잡는다. 몇 년 전만 해도 4시간 정도 나가면 됐지만 올해엔 10시간 정도 나가, 그것도 기름을 아끼느라 다음 날까지 잡고 들어온단다. 샛바람이 몰아치면 흰 갈기 날리는 파도에 작은 목선은 가랑잎이다.
남정네를 내보낸 아낙네들은 아침부터 부두에 나가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아무개 아무개가 못 들어왔다메…” 하고 쑥덕인다. 그러나 오후 들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배들이 나간다.
우리 고향은 잘산다고 소문난 곳이다. 오징어 떼를 잘 만나면 한여름에 벼락부자가 나오기도 한다. 북한의 다른 곳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다 보니 죽음과 이웃하면서도 매년 일확천금을 노리는 외지사람이 밀려들면서 고향 바닷가에는 오히려 집들이 늘어난다.
올여름에도 고향 사람들은 또다시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갈 것이다. 전남 해안에서 어선 침몰로 11명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내 마음은 곧바로 두고 온 고향으로 달려갔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서글픈 올해 소망이 튀어나왔다. “젠장, 올핸 고향 사람들 좀 고만 죽으쇼.” 이젠 동네 슈퍼에서 북한산 오징어만 봐도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