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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준우]愚問을 던질 수 있는 사회

입력 | 2005-12-31 03:00:00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질문이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을 기대하는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 ‘엄마가 좋다’ ‘아빠가 좋다’ ‘둘 다 좋다’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랐을 것이다. 영악한 아이는 ‘엄빠’라고 대답한다는 농담은 커서 들었다.

쉬운 질문도 있다. “독재가 좋아, 민주주의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철이 든 사람은 누구나 “민주주의가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 등과 같이 답이 뻔한 질문은 우리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대답과 대답에 걸맞은 행동을 하면서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낄 수도 있다.

뻔한 질문을 생활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시대정신이나 사회 정의에 관련된 질문은 마치 윤리 교과서와 같은 답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윤리 교과서로 풀기엔 너무도 다양한 갈등(葛藤)을 안고 있다.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듯이 풀기 힘들고 상충하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지난 한 해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곳곳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 부닥쳤고, 각기 다른 행동이 충돌을 낳았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 사태나 농민 시위는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힘든 한 해였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갈등을 돌이켜 보면 “복잡한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민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새해 아침에는 누구나 행복한 한 해, 마음 편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지난해와 같이 골치 아픈 갈등이 불거지지나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지만 올해도 역시 기분 좋게 새해를 열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단순하지 않다. 사회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동호회(카페)는 2000년에 22만 개에 불과했지만 2001년 99만 개, 2002년 192만 개, 2003년 400만 개, 2004년 530만 개로 늘었고 현재는 600만 개나 된다. 여행, 취미, 연예인 팬 등 사회 갈등과 관련이 없는 카페가 많지만 가치관과 연관성이 있는 사회 정치 분야의 카페만도 17만여 개다. 카페 가입자 수는 중복 가입을 포함해서 약 3700만 명이다.

다양성은 이미 우리 사회의 키워드다. 이 때문에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가지 과제가 우리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한편으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기해지고 큰 차이가 있는 열망을 표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슈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을지도 모른다. 각종 이슈를 둘러싼 갈등은 삶의 일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문을 던져 보자. “폭력 시위가 나쁜가, 폭력 진압이 나쁜가?” 현답은 없을지라도 서로를 관용하는 열린 자세로 생각하다 보면 갈등은 줄어들 것이다. 질문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지난해의 유행어를 사문화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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